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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vs. 상하이



올드 상하이 노스텔지어. 상하이가 가장 화려했던 시기를 그리는 상하이 사람들의 추억이자, 향수이다. 1920년대부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기 전까지, 상하이는 동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였다. 당시 급격하게 서구 문명이 유입되기 시작하며, 황푸강변에 높은 건물이 세워지고, 사람들은 영화와 커피를 즐기며 밤에는 댄스 문화를 향유했다. 모던보이, 모던걸로 불리는 젊은이들이 거리에 넘쳐났다.

▶ 1928년 상하이 와이탄의 모습

▶ 2011년 상하이 와이탄의 모습




세계공원 vs. 영시낙원

1990년대부터 상하이에서는 이 시기를 그리워하며 옛 상하이를 묘사하는 도서와 영화들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최고의 전성기 때 자살로 삶을 마감한 아름다웠던 여배우 롼링위의 일생을 영화 <롼링위>, 올드 상하이 열풍의 중심에 있는 작가 장아이링의 소설들(우리나라에는 영화 <색, 계>의 원작소설을 쓴 작가로 유명하다.)을 읽고 나는 상하이에 대한 큰 환상을 갖게 되었고, 2011년 6월 그런 ‘올드 상하이’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여행을 떠났다. 

 
▶ 상하이가 가장 화려했던 시기에 살았던 배우 롼링위(1910.4.26-1935.3.8, 왼쪽)과 작가 장아이링(1920.9.30-1995.9.8, 오른쪽)

1920-30년대의 상하이를 완벽하게 구현해 둔 곳이 바로 상해영시낙원(上海影视樂园). 영시낙원을 여행의 첫 출발점으로 삼았다. 중국인의 스케일에 맞게 건물들을 대부분 실사판의 크기 만들어두어, 공원 자체 규모가 상당하다. 관광객들에게는 현재 상하이 시내 모습와 과거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도착하니 현재에도 많은 영화가 영시낙원에서 제작되고 있어 다소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 있었지만, 찰나의 현재, 단편적 모습의 도시를 보고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아쉬운 여행자에게 상해영시낙원은 도시의 과거를 선물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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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극동 제일을 뽑내던 댄스홀 백락문 당시 모습(위), 현재까지 남아 있는 건물의 모습(아래)




베이징 여행을 떠난 것은 상하이에 다녀오고 2년 뒤. 1949년 화려했던 상하이를 어느 순간 갑자기 삼켜버린 정치도시 베이징은 어떤 힘을 가지고 있을 지 궁금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2013년 8월의 어느날, 그곳으로 향했다. 베이징에서도 역시 테마파크 이지만, 씁쓸한 ‘베이징의 현재’를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던 곳, 세계공원(世界公园)을 여행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중국감독 지아장커의 영화 <세계>는 중국 베이징의 한 화려한 테마파크(세계 각국의 유명 건축물을 미니어쳐로 만들어 놓은 공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모두 농촌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베이징을 찾은 농민공들.  

중국이 급성장하면서 베이징은 국제도시의 중심으로 변모했다. 세계의 여러 모습을 담은 테마파크 역시 세계화를 빠르게 실현하고자 하는 베이징의 욕망이 담긴 공간이다. 그런 화려한 장소에서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들을 보여주는 것이 영화의 핵심.

▶ 관광지에서 관광용 교통수단을 모는 사람들도 대부분 타지사람들이라 한다.


여주인공 따오는 매일 세계 각국의 의상을 바꿔 입어가며 세계 각국의 춤을 추지만, 정작 본인은 비행기 한번 타보지 못했고, 여권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남자주인공 타이셩의 직업은 농촌출신의 남성들이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경비원. 경비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잡일을 도맡아 한다. 월급은 거의 없고 숙식 정도만 제공해 주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직업과도 병행한다. 타이셩은 사람들에게 가짜여권을 만들어주는 일로 돈을 번다.

지아장커 감독은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은 크게 발전했으나, 그 안의 사람들은 과연 모두 행복한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매일같이 매스컴을 통해 전해지는 중국의 성장은 눈부시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많은 비극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영화를 통해 느낄 수 있다.

이런 영화에 나오는 우울함과 농민공들의 고난함이 궁금하여 베이징의 세계공원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세계 어디에서나 흔하게 있을 법한 테마파크였다.



다른 면을 하나 느꼈다. 얼마 전 시드니 여행 중 오페라하우스를 보면서 실물을 볼 때는 '뭐 건물 하나 가지고 유난인가' 싶었는데, 세계공원의 오페라하우스를 보니 크기만 다를 뿐 똑같이 만들어도 본래의 건물 아우라는 전혀 모방할 수 없음을 느꼈다. 날로 발전하는 중국의 모방기술. 그러나 아무리 짭퉁을 찍어 낸 들 스티브 잡스와 같은 앞서 나간 개혁가들의 정신, 신념까지 찍어낼 순 없을 듯 하다. 이것이 실제로 세계공원을 방문하고 느낀 '눈부시게 발전한 중국 이면에 존재하는 비극'의 한 면이었다.


왕푸징 vs. 난징루

이런 생각은 베이징의 최대 번화가 왕푸징(王府井)으로 나를 인도한다. 수백년 전부터 왕족들의 저택이 몰려 있어 번화가여 온 이 거리 입구에는 ‘현대적 번성의 상징’인 애플스토어가 솟아올라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애플스토어가 없다.) 유리를 소재로 투명한 외관을 한 애플스토어는 (최소한 내가 느끼기엔) 주변풍경과 어우러지지 못한 채 서 있는 듯 하다.


왕푸징에서 놀란 점은 입점한 상점들이 모두 세계적인 브랜드였음에도, 어쩐지 모르게 화려함이나 고급스러움을 느낄 수가 없다. 건물의 크기나 조명 등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기죽지 않을 정도이지만, 그 속에는 속옷만 입고 걸어 다니는 아저씨들이 있고, 쓰레기통을 뒤지는 할머니가 있다. 쓰레기는 길거리에 쉽게 버려진다. (또 쉽게 없어지기도 한다.) 명품관 뿐 아니라 요즘 핫한 브랜드 상점들(자라, 포에버21 따위의)을 지나가는 사람들과 거리는 묘한 이질감을 만들고 있다. 나는 왕푸징을 ‘세계적 번화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욕망만이 넘치는 공간’이라 느꼈다. 다소 지나친 비약일 수 있지만.

상하이의 최대번화가 난징루는 조금 달랐다. 난징루는 1920년대 모습이나 현재나 큰 차이가 없다고 하는데, 오히려 소설이나 영화에 그려지는 과거의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고 여겨진다고 한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봐도 1920년대에 이 정도의 거리가 조성되어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 1930년대 상하이 난징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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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해영시낙원에 복원되어 있는 난징루와 현재의 난징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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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의 상하이 난징루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찾아간 난징루는 화려했던 옛 영화를 잊지 못하는 노년의 여배우와 닮아 있었다. 20-30년간 최고의 번성을 이루었던 도시가, 또 이 거리가 어느 날 갑자기 붉은 물결에 침식해버렸다는 사실에 이방인이 나도 쓸쓸함을 느꼈다.

중국에서 베이징 사람들과 상하이 사람들의 라이벌의식은 유명한데,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경쟁한다. <베이징런, 상하이런>이라는 책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소개되어 있다.

p. 19 한 상하이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그 유명한 왕푸징에 갔는 데 몇 분 걸으니까 벌써 상가 거리가 끝났다. 그래서 혹시 길을 잘못 들었나 하고 " 베이징에는 왕푸징이 도대체 몇 개나 있죠?"라고 물었다고 한다.

어느 도시보다 먼저 도시화를 이룬 상하이 사람들의 오만감이 느껴지는 이야기다. 편견일 수 있지만, 난 확실히 상하이 사람들이 베이징 사람들 보다 세련됨을 느꼈다. 또 왕푸징 보단 난징루에서 보다 깊은 매력을 느꼈다.

후퉁과 스허위엔 vs. 농탕과 스쿠먼

왕안이의 소설 <장한가>의 도입부에는 상하이 주택과 거리를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p. 15 스쿠먼이 즐비하게 서 있는 골목은 상하이 골목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곳에 속한다. 저마다 널따란 저택이 위용을 자랑하듯… 일단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원은 깊지 않고 응접실도 그러하다. 두세 걸음만 걸으면 나무 계단이 바로 머리 위에 있다… 거리 쪽으로 난 창문은 운치가 있다…

소설을 읽으며, 상하이 사람들이 사는 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지 궁금했다. 1920년대에 상하이에서 유행한 건축양식인 스쿠먼(石库门)과 그 가옥이 이룬 골목길, 룽탕(弄堂)을 찾아 나섰다.

신톈디(新天地)는 젊은이들이 낮에는 커피를 즐기고, 저녁에는 음악과 맥주 한 잔을 즐기기에 좋은 바와 카페 거리다. 거리를 스쿠먼으로 꾸며놓아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당연 인기가 높다. 신뎬디에 도착하니, 확실히 도심의 건물들과 다른 건축양식의 건물들이 보여 눈길을 끈다. 



상하이문학을 공부하면서 정자간문학, 정자간작가와 같은 단어를 수업시간에 들은 적이 있다. '뭐 공간 이름이 문예사조가 되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정자간이란 상하이 스쿠먼 안에 있는 작은 쪽방을 일컫는 말로, 가난한 문인들이 세를 얻어 살았다고 한다. 실제로 한 번은 꼭 보고 싶어, 신톈디 스쿠먼박물관에 방문하여 실제 정자간을 살펴보니 작은 공간이지만, '소설이 줄줄 써질 것 같은' 특별한 느낌이 있다. (물론 당시 이 좁은 공간에서 생활했던 문인들은 갑갑하기 그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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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통해 스쿠먼의 내부구조를 경험해보고, 상해영시낙원에 복원되어 있는 전통 스쿠먼 골목인 농탕을 거닐어 보았다. 조금은 답답한 구조이나, 이웃간의 친밀함이 있었을 것 같아 꽤나 정겨웠다. 


상하이의 스쿠먼은 이미 거의 박물관 속 유물이 되어가고 있지만, 베이징의 스허위엔(四合院)과 후퉁(胡同)은 조금만 길을 잃어도 아직까지 쉽게 들어 갈 수 있었다. 스허위엔은 4면이 막힌 베이징의 전통가옥 구조를 일컫는다. 밖에서 보면 집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안에 사람은 살고 있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대문은 일부러 낡은 문을 달아 두기도 한단다. (도둑의 표적이 될 수 있으므로) 사합원 중에는 들어가보면 눈이 휘둥그레 지는 대저택도 있다고 한다. 들어가는 순간 가족들만의 공간이 열리는 셈이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면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형성한 골목길인 후퉁이 된다.


유리창(琉璃厂)거리가 생각보다 짧게 끝나버려서 아쉬움에 뒷골목을 산책하였는데, 그 뒷골목에서 실제 베이징 사람들의 삶을 엿보고 느낄 수 있었다. 산징후퉁(三井胡同)에 진입해 버린 것이다.



좁은 골목길 앞뒤로 빵빵거리며 들어오는 갖은 교통수단들. 골목 구석구석에 삼삼오오 모여 장기 따위를 두고 있는 아저씨들.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과일과 채소를 파는 아주머니들. 



후퉁이야말로 진짜 베이징 삶의 결정체. 북경을 이야기하는 <북경 자전거>, <햇빛 쏟아지던 날들> 등에 담긴 영상들과 큰 차이가 없다. 베이징 올림픽 때 많이 철거 해버렸다고 하지만, 여전히 시내 곳곳에 수천 개의 후퉁이 남아있다고 한다. 그 모습도 비슷비슷하여 영화가 찍힌 정확한 장소를 찾아가 보는 것은 절대 불가능. 하지만, 어딜 가도 실재하는 베이징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분위기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베이징카오야 vs. 샤오룽바오

베이징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먹는 오리요리. 오리에 곁들여 먹는 파, 마늘, 양파, 전병을 다 따로 시켜야 하는 데 그렇게 주문하기엔 아직 나의 중국어 실력이 부족하여 세트로 주문했다. 무려 480위안(한화 8-9만원 선). 

이곳 물가에 비하면 최고급 음식이지만, 음식점 분위기는 한국의 중국집만 못하다. 소리지르며 주문을 받고 있는 종업원들과 뛰어다니는 아이들. 외국인 관광객도 많으니 '첨밀밀' 같은 중국음악도 잔잔히 흘려줄 만 한 데, 음악은 커녕 맥주 한 잔 시키기도 버거운 소음이 넘쳐 난다. 고기 맛은 좋다. 베이징 카오야는 태어날 때부터 카오야가 되기 위해 사육되어 진다고 하는 데, 오리의 운명이 슬프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맛은 정말 일품이다.



상하이의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르는 예원(豫园)의 샤오룽바오(小笼包,부추만두?). 예원에는 있는 지점은 제2호점이고, 난 원조집을 찾아가보고 싶었다.

샤오룽바오는 본래 1871년 상하이 자딩구 난샹진에 위치한 딤섬집 주인 황밍시엔에 의해 창안되었다. 그는 처음에 난샹다만터우를 만들어 구이위안에 가져다가 팔았는데, 인기가 좋아지자 다른 가게들이 따라 만들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복제의 문화는…) 결국 황밍시엔은 장사에 타격을 입게되고, 다시 피가 얇고 즙이 풍부한 난샹샤오룽바오를 개발하였다. 구이위안 일대에서 샤오룽바오는 큰 유명세를 얻었고, 예원에까지 분점을 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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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여행 중 원조집도 가보고, 예원에 있는 분점도 가보았는데 둘 다 맛은 똑같았다. 하지만 원조집은 사람이 거의 없고 예원은 한 시간 가량을 기다려 먹어야만 했다.


상하이와 베이징 여행에서 가장 놀란 것은 껍데기가 서울과 거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아니 오히려 건물 규모는 서울에 비견하기 어렵다. 더욱이 상하이는 1920년대부터 이미 도시화가 진행되었으니까 그렇다 여겨도, 베이징은 한국에서 매번 자금성이나 천안문광장 영상만 보다 보니 도시와 그리고 고층 건물들이 이 정도로 발전해 있을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하지만 더욱 놀란 것은 껍데기가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지만, 사람들은 내가 2006년 처음 중국을 방문했을 때 하얼빈에서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그 때 느꼈던 중국인의 기질 그대로를 갖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미 G2에 진입한 경제대국 아닌가.) 인상 깊었던 중국 사람 2명을 소개한다.

# 내가 만난 중국인 1. 하얼빈의 삼륜차 운전수
하얼빈에 있을 때,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하려고 삼륜차를 불러 세웠다. 인터넷으로 공항에서 숙소까지 삼륜차 운행요금을 조사해 갔기에 걱정 없이 출발했다. 도착해 요금을 내려 하자, 운전수는 다섯 배의 요금을 요구했다. 30분간을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5배에 달하는 요금을 주고 말았다.

우연찮게도 다음날 학원을 가려 삼륜차를 잡는데 같은 운전수가 집 앞에 있었다. 그는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에도 내가 학원 가는 시간에 맞춰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2달 가까이 매일 그의 삼륜차를 타고 등교했다. 학원을 다니며 어느 정도 중국어가 가능해진 어느 날, 그에게 물었다. 

“왜 첫 날 요금을 그렇게 많이 받았어요?”

미안하다며, 한국으로 돌아갈 때 ‘무료’로 공항까지 바래다 주겠다 약속했다. 결국 그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내가 만난 중국인 2. 베이징의 택시 아저씨
베이징에서 송경령고거에 가보기 위해 올라탄 택시에서 만났다.  5시경에 닫는 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실 출발할 때만에도 들어갈 만한 시간이어서 출발을 했다. 

택시 아저씨가 우선은 베이징에 대한 장황한 설명으로 가는 길이 오래 걸렸다. 거의 뭐 북경대 교수 수준의 문화 이야기 꽃이 핀다. 하늘에서 북경을 내려다 보면 2개의 용이 있다 한다. 홍룡과 수룡. 붉은 용은 자금성, 수룡은 호우하이(後海), 치엔하이(前海), 베이하이(北海), 난하이(南海)로 이어지는 호수라 용의 형상이라고 하는데, 그럴 듯하다. 또 '하이(바다 海)'라는 명칭은 몽골 사람들이 지배하였을 때 붙여졌다고 한다. 왜냐하면 몽골 사람들이 살았던 곳은 바다가 없어서 이런 적은 물만 있어도 '바다 해'라 불렀다며...

그렇게 설명하는 와중에 아저씨가 길도 잃었다. 그리곤 라오베이징인(북경 토박이)에게 쏭칭링고거가 아직 열려 있는 지 물어보겠다며 한 10분을 내려서 수다를 떨고 온다. '아마 닫았을 거라며' 그러곤 잃어버린 길을 다시 돌아가서 겨우 도착. 당연히 못 들어가는 타이밍이지.

언제 다시 돌아가도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지며, 중국 여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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