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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재 (四宜齋)


정약용이 강진으로 유배되어 4년간 머무르며 <경세유표> 등을 집필했던
 - 사의재 (四宜齋)

 강진에서는 고달픈 몸 하나 누일 방도 구할 수가 없었다. 정약용은 <상례사전서>에서 "한 노파가 나를 불쌍히 여기고 자기 집에서 살도록 해주었다."라고 쓴 대로 한 노파의 동정으로 몸을 누일 수 있었다... 

p. 151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4가지를 마땅히 해야 할 방'이라는 뜻으로, 맑은 생각, 엄숙한 용모, 과묵한 말씨, 신중한 행동이라고 한다. 
정약용이 처음 강진으로 내려갔을 때, (유배 온 학자에 대한 당연한 처사이겠지만) 사람들이 매우 냉담했다고 한다. 
머무를 곳 하나 구할 수 없었을 정도라고 하니, 그의 심정이 어떠하였을 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당시에는 주막이었다고 하니, 주변이 시장통으로 북적거렸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현재의 사의재는 정말 '맑은 생각'이 가능할 것 같이 고요하고 한적했다. 
강진이라는 도시 자체가 그랬다. 사람도 많지 않고 비옥한 토지에 바다를 끼고 있어 한적하니 살기 좋아 보였다. 
정약용은 이 곳에서 방대한 양의 책을 집필을 했고, 김영랑은 아름다운 시를 지었다. 두 인물과 참 어울리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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