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문학촌과 소나기마을, 소설 <소나기>의 배경
p. 9 벌써 며칠째 소녀는 학교서 돌아오는 길에 물장난이었다. 그런데 어제까지는 개울 기슭에서 하더니, 오늘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서 하고 있다. 소년은 개울둑에 앉아 버렸다. 소녀가 비키기를 기다리자는 것이다...
- <소나기(황순원作)>
양평을 지나가는 길에, '소나기마을'이라는 표지판이 있어서, "오? 황순원의 소나기인가?" 찾아보니, 그 소나기가 그 소나기. 그 때는 너무 늦어서 못가보고, 가을이 시작되는 주말, 찾아가보았다. 주차장에서부터 들려오는 아이들의 소리. 황순원문학관에는 사람이 엄청 많았다. 확실히 사랑받는 소설은 소설인가 보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잠깐 보냈고, 그 이후로도 매년 여름 시골에 가서 사촌들과 놀았던 추억이 있어서 인지, 나에게 <소나기>라는 소설은 교과과정에서 배우는 것 이상의 감흥이 있다. (물론 소년과 소녀 같은 로맨스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문학관을 오르는 길, 문학관 안은 <소나기> 속 순박한 소년의 모습과 새침한 소녀의 이미지를 캐릭터로 형상화하여 잘 꾸며두었고, 잘 몰랐던 황순원 작가의 삶과 성품을 읽어볼 수도 있었다. 문학관 뒷쪽으로 길을 내어 곳곳에 소설 속 장면을 구현해 두었는데, 산책하기에도 좋고 소설 속 기분을 내기에도 좋았던 것 같다.
하지만 산책로에 오르는 중 문학관 앞뜰에서 돌연 분수같이 물이 솟아 올랐다. '뭐지?' 싶어서 뒤를 돌아보니, '소나기' 느낌이 나도록 만들어둔 스프링쿨러(?) 같은 장치다. 아이들은 마냥 좋아하며 소리를 지르고 뛰어 다니는데, 내가 느끼기엔 너무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불편했다. 조금 더 문학적이고, 감성적으로 구현해 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학관에는 사람이 엄청 많았는데, 낮은 산을 넘어 반대편에 조성해둔 징검다리 쪽은 사람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나는 그 곳이 마음에 쏙 들었다.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고, 그 위에 놓인 돌을 보고 있으니, '멍~ 하니' 소녀를 바라 보고 있을 법한 소년의 모습이 그려져 기분이 좋다.
누렁송아지였다. 아직 코뚜레도 꿰지 않았다. 소년이 고삐를 바투 잡아쥐고 등을 긁어주는 첫 후딱 올라탔다. 송아지가 껑충거리며 돌아간다.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범법이 된다. 모두가 하나의 큰 꽃묶음 같다. 어지럽다. 그러나 내리지 않으리라. 자랑스러웠다. 이것만은 소녀가 흉내내지 못할 자기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 <소나기(황순원作)>
수숫단 속을 벗어 나왔다. 멀지 않은 앞쪽에 햇빛이 눈부시게 내리붓고 있었다. 다랑 있는 곳까지 와 보니, 엄청나게 물이 불어 있었다. 빛마저 제법 붉은 흙탕물이었다. 소년이 등을 돌려 댔다. 소녀가 순순히 업히었다... 개울가에 다다르기 전에 가을하늘이 언제 그랬는가 싶게 구름 한 점 없어 쪽빝으로 개어 있었다... - <소나기(황순원作)>
소녀는 소년이 개울둣에 앉아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날쌔게 물만 움켜낸다. 그러나 번번히 허탕이다. 그래도 재미있는 양, 자꾸 물만 움킨다. 어제처럼 개울을 건너는 사람이 있어야 길을 비킬 모양이다.... <소나기(황순원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