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와 요리 (dish)
投稿日: Oct 06, 2013 5:48:27 AM
** 이 글은 하루키의 소설과 수필 몇 권을 읽고,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뽑아 구성한 것입니다.
(저는 비교적 최근에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에 빠져든 평범한 독자입니다. 최근에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하루키의 모든 작품을 읽진 못했습니다. 또 평범한 독자이기 때문에 문학적으로 작품을 평가할만한 역량은 되지 않습니다. 또 빠져들었기 때문에 다분히 하루키와 그의 작품에 우호적입니다.
스포일러가 싫으신 독자 분들은 해당 글을 읽지 않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몇 개 문장을 발췌했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데 방해가 되실 수 있습니다. 또 기억력이 많이 좋은 편은 아닙니다. 혹여나 제가 잘 못 기억하고 있거나, 제멋대로 해석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루키 소설에는 맛있는 식사가 등장한다.
맥주 한 잔을 마셔도 안주가 대단하다.
또 허기가 지면 그냥 '치즈를 뜯어 먹는 것'이 아니라,
'까망베르 치즈를 크래커에 발라 먹는다.'
'샐러리를 마요네즈에 찍어 먹는다.'
식재료가 심상치 않다.
요리과정 묘사도 꽤 진지하고, 자세하다.
소설을 읽고만 있어도, 그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 또 맛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p.83 "그러네요. 정말 맛있습니다.”… 샌드위치는 내가 정한 기준선을 가볍게 넘어서고 있었다. 빵은 신선하고 탄력 있었고, 잘 드는 청결한 칼로 자른 것이었다.
계산사 주인공이 작업을 할 때, 의뢰인의 손녀가 만들어 온 샌드위치에 대한 평가다.
샌드위치에 있어서도 이렇게 까다롭다니…
궁금하다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p.158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나는 간단한 저녁 식사를 만들었다. 우메보시를 갈아 그것으로 샐러드드레싱을 만들고, 정어리와 유부와 산마 튀김을 몇 개 만들고, 셀러리와 쇠고기찜을 준비했다... 데친 명아주 나물을 만들고, 깨를 버무린 강낭콩을 만들었다.
간단한? 요리가 아닌 것 같은데?주인공은 도서관 사서에게 '일각수'에 대해 조사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저녁식사를 대접한다. 사서는 위확장증. 이렇게 준비된 요리에 밥과 된장국을 더먹고, 프랑크푸르트 소시지와 초콜릿 케이크까지 먹어 치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배가 정말 고파졌다. 하지만 하루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식재료들을 훑어보면 평소에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사기에, 만들어 먹기엔 꽤 부담스러운 재료, 요리법이다.
<이윽고 슬픈 외국어>
p.225 내 가게에서는 롤 캐비지를 내놓고 있었기 때문에 아침부터 자루에 가득 들어 있는 양파를 잘게 다져야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많은 양파를 눈물도 흘리지 않고 단시간에 재빨리 썰 수 있다.
하루키 소설 속에 맛있는 음식향이 나는 것은, 그가 소설가가 되기 전 재즈바를 경영했기 때문일 것이다.
바에는 안주도 필요하고, 직접 재료를 준비하여 요리를 했다고 하니까.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p.148 “우리 집에서 만들어낸 독창적인 칵테일이 몇 가지 있긴 하지. 가게 이름과 같은 ‘로빈스 네스트’라는 게 있는데 그게 제일 반응이 좋아…”
소설 속에서만 등장하는 맛 볼 수 없는 칵테일이지만, 구미를 당긴다.
왠지 하루키가 운영했던 재즈바에는 이런 맛있는 칵테일이 많았을 것 같다.
<먼 북소리> & <댄스 댄스 댄스>
p.341 <댄스 댄스 댄스>에 하와이 장면이 나오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소설을 쓰면서 나는 무척이나 하와이에 가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하와이의 장면을 쓰다 보면 아주 조금은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열대의 태양 아래서 뒹굴며 피나콜라다를 마시는 것 같은 기분이다.
하루키의 유럽 체류 에세이 먼 북소리를 읽으면서 <댄스 댄스 댄스>에 하와이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하길래, 바로 사서 읽어 보았다. (나 역시도 한국의 매서운 추위에 몸서리 치고 있었기 때문)
p.63 나는 이따금 바다에 들어가 헤엄을 치고, 바닷가의 스탠드바에서 차가운 피나 콜라다를 마셨다... 거대한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며 수평선이 토마토소스처럼 붉게 물들고, 선셋 크루즈의 선박이 돛대에 불을 켜기 시작할 때까지...
<댄스 댄스 댄스>를 읽으면 피나콜라다가 엄청 자주 등장한다. 주인공은 13살 어린 여자애와 여러 이야기로 얽히면서 함께 하와이에 가게 되는데, 하와이에 머물며 계속해서 피나콜라다를 마신다. '소설 안에서 주인공이 마신 피나콜라다는 총 몇 잔일까요?' 문제를 내고 싶을 정도.
13살 여자아이가 마셔보고 싶다 하자, 새로 한 잔 주문하여 권하기도 한다. (이 한 잔이 해당 문제의 정답에 크게 좌우하겠군)
<댄스 댄스 댄스>에는 블러디 메리라는 칵테일도 꽤 자주 등장하는데, 역시 기묘하게 얽힌 호텔 여종업원이 마시는 칵테일이다. 토마토주스와 보드카를 베이스로 만든 칵테일이라고 한다.
나야 뭐... 바, 칵테일 이런 곳과 잘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번 연말에 기회가 있으면 한 잔 마셔봐야겠다! 피나콜라다, 블러디 메리.
<상싱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
"맛있어 보이네, 그거."
"맛있어. 버섯 오믈렛과 완두콩 샐러드야."
...
"뭘 주문했는데?"
"마카로니 그라탱."
"마카로니 그라탱도 괜찮아."
학교 앞 식당에서 와타나베와 미도리의 첫 만남.
와타나베는 조용하고 차분하다는 레스토랑에서 매우 맛있다는 오믈렛을 먹고 있다.
미도리는 갑자기 와타나베에게 말을 걸어 온다.
오믈렛과 그라탕, 그리고 둘의 만남. 산뜻함이 느껴진다.
<하루키 일상의 여백>
p.57 요코하마의 중국인 거리는 도저히 걸어다닐 수가 없고, 중국인 거리는커녕 슈마이 냄새를 맡는 것이 싫어 요코하마 역에서 내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매우 심각한 알레르기다.
맛있는 음식을 글로 그려내는 데 탁월한 하루키가 중국음식 알레르기가 있다고 한다.
종류가 대단한 중국음식을 못 먹다니... 또 내가 생활했던 요코하마에 내리기 조차 꺼린다니... 매우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야 뭐 그냥 일개 팬일 뿐이지만, 이 책에 배꼽잡고 웃을 만한 문구가 하나 나온다.
그의 아내는 중국음식을 좋아하는데, 언제는 한 번 라면이 먹고 싶어서 혼자 라면집에 갔다가.
옆에 앉아있는 젊은 여자들로부터 "나이가 들어서도 혼자 라면을 먹으러 오는 여자만은 되고 싶지 않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와서 엄청나게 화를 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루키가 남긴 한 마디가 너무나도 재치 있다.
p.58 그러니까 혼자서 묵묵히 라면을 먹고 잇는 40대 여성을 어딘가에서 보더라도 너무 흉보지 말아 주길 바란다. 인간에게는 각자 여러가지로 개인적인 사정이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분풀이는 반드시 나에게 오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