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항(横浜港)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 속 요코하마

작년에 인기가 좋았다는 드라마를 최근 보게 되었다.

회사생활과 관련된 이야기일 줄 알고 기대했는데,

30세 모태솔로 OL(office lady, 여회사원)이 대학생 아르바이트생과 처음 연애를 하게 되며 경험하는 삼각관계, 사랑싸움 등 로맨틱 코메디 드라마였다.

스토리는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드라마 전반 배경이 요코하마였기에 주인공들보다 주변배경을 눈이 빠져라 봤다.

다른 포스트에서도 요코하마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하는데, 

그래 봤자 고작 1년 요코하마에 교환학생으로 있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삼시세끼를 스스로 챙겨먹었고,

외국인등록, 핸드폰구매, 인터넷설치, 각종 행정업무 등을 혼자서 처리해봤다.

'오늘은 회사를 쉬겠습니다'의 아오이시(아야세 하루카 分)가 연애에 있어서 여러 경험을 처음으로 겪어갔던 것처럼,

요코하마에서의 나도 늘 설렘 가득한 처음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요코하마를 떠올릴 때면 마음이 조금 들뜬다.

생각해보니, 심지어 일본의 성인식에도 참석했다.

드라마에서 매우 성실한 회사원으로 등장하는 아오이시는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하여 사무실을 청소하고 옥상에 행주와 걸레를 널어 둔다. 

옥상 신에서는 늘 멀리 요코하마의 상징, 랜드마크타워가 보인다.

▲ 왼쪽, 랜드마크타워

대학교 2학년, 교환학생을 요코하마로 가게 된 것은 '연고가 있으니 안심'이라는 부모님의 생각 덕분이었다.

사실 그 연고라는 것이 가까운 친척이나 오랜 친구도 아니고,

고등학교 1학년, 2주간의 어학연수로 일본에 갔을 때 같은 시설에 머물렀던 한 일본인 친구였다.

1년간 펜팔을 하다 2학년 여름방학, 나는 혼자서 그 친구 집에 놀러 가겠다며 일본행 비행기 탑승을 감행한다.

(요즘 부모님께 이런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2번을 만난 친구가 요코하마의 유일한 연고였다. 

친구는 디즈니랜드, 하라주쿠 등에도 데려가 주고, 유카타까지 빌려주어 마쓰리도 함께 갔다. 또 대부분의 요코하마 명소를 모두 구경시켜 주었는데, 랜드마크타워에도 올라갔다.

▲ 당시 나의 사진 실력

'오늘은 회사를 쉬겠습니다'에서 여러 차례 데이트 장면으로 등장하는 항구 주변 미나토미라이(みなとみらい). 주인공들의 첫 키스 촬영지이기도 하다.

이 부근에는 '아카렌가(赤レンガ)'라고 하여 붉은 벽돌로 된 창고건물 안에 레스토랑이나 아기자기한 상품을 파는 상점이 있는 명소가 있다. 지갑 얇은 대학생이었던 터라 감히 사진 못하고 구경만 했던 추억이 있는 곳.

▲ 오른쪽 끝에 작게 보이는 지붕이 아카렌가

연말이 되도록 유급휴가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았던 아오이시는 아카렌가 앞 벤치에 앉아서 "오늘 회사를 쉬겠습니다"라고 회사에 전화를 한다.

요코하마에서 나는 사실 무시무시한 재능을 하나 발견했는데, '인형 뽑기'였다. 

당시 한국보다 10배 가까이 비쌌던 인형뽑기를 친구와 재미 삼아 해보았는데 연속으로 2개나 뽑았던 것! 

(다들 그런가? 일본 뽑기가 많이 쉬운가?)

작은 것은 친구에게 선물하고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풍성해졌다.

'오늘은 회사를 쉬겠습니다' 1화에서 남주인공 타노쿠라(후쿠시 소우타 分)는 인형뽑기 기계, 'UFO CATCHER'에서 오리인형을 뽑아 아오이시에게 선물하는 데, 나 역시도 같은 기계에서 인형을 득했었다.

아오이시는 나중에 혼자 이 기계에서 둘의 추억이 담긴 오리 인형을 간절히 뽑고자 했으나, 계속해서 실패로 돌아가고 잠시 돈을 뽑으러 간 사이, 

2명의 초등학생이 뽑아가게 된다.

(음.. 일본의 인형뽑기. 원래 쉬운 것인가 보다!)

그리고 3년 전.

그리운 마음에 요코하마에서 살았던 기숙사, 학교 등을 되짚어 걷는 여행을 했다.

기숙사가 있던 역에서 내려, 육교를 건넌다.

걷다 보면 핸드폰을 가입한 'au'가 그대로 있고, 하굣길에 장을 봤던 'ok 마트'가 있다.

저녁 8시가 넘으면 반찬 마다 50% 스티커가 붙기 때문에, 스시나 야키소바를 사서 야식으로 먹으면 행복해졌다.

내가 있을 땐 없던 라멘집이 생겼다.

(당시 있었더라면 엄청 살이 쪘을 것 같아, 다행.)

비가 퍼붓던 날, 우산 없이 기숙사로 뛰어가는 데 오른쪽 집 할머니가 우산을 빌려주셨다.

늘 '저렇게 많은 화분을 어떻게 다 키우지?' 궁금했던 집은 여전하다.

큰 길을 건너 기숙사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자!

기숙사 건물이 아예 없어져 버렸다.

그 자리엔 신축 집들만...

존재가 사라지자 더욱 그리워졌다.

▲ 이 골목. 여대생 기숙사라는 소리에 가끔 속옷 도둑 변태들이 출몰하여 두려움에 휩싸이곤 했다.

1년간의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밤,

미나토미라이의 관람차를 탔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던 요코하마

다시 눈에 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