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기념비전, <지하철 史호선> 속 그곳
p.128 교보문고 앞에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해 세운 비각이 보인다. 비각 안에는 '이정원표'라는 표석이 있다. 바로 이곳이 조선 시대 길의 원점이었다...
- 기념비전
일주일에도 5차례 출퇴근길에 항상 마주하는 풍경인데,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그냥 지나쳤던 풍경들...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의미도 알고, 생각해보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광화문 조선일보 건물 앞에는 도로원표가 있는데, 서울의 중심에서 각 지역까지의 거리를 표시해둔 비석이다. 전에 근처에서 근무할 때 자주 지나치며 '아 대전까지 몇 키로구나...'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바로 대각선 길건너에도 이정원표가 있구나. 원래는 태평로 가운데 지점이 서울의 중심, 한국의 중심이자 원점이라고 하는데, 교통에 불편하여 조금 비스듬히 비켜 세워두었다고 한다. 양쪽에 있는 두 개 다 정확한 중심은 아닌 듯하다.
어디가 정확한 중심이든,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않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나의 중심을 찾아가는 듯하여 기쁘다.
p.67 조선 시대에는 이 부근에 '태평관'이라는 국립호텔이 있었다. 지금도 남대문 사거리와 광화문 사거리를 잇는 도로를 '태평로'라 부르는데, 이 명칭은 여기서 유래했다. 태평관은 우리나라를 찾은 중국 명나라 사신이 머물던 장소다...
- 태평로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
근처에서 근무할 때, 회사 사람들이 회사의 위치를 설명할 때, '태평로1가'라는 단어를 자부심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 경우를 종종봤다. 누구나 잘 아는, 흔히 쓰는 지명은 아닌 것 같은데, (오히려 광화문 4번출구요, 광화문 앞 광장 옆이요 등등이 더 알기 쉽지 않나?) 굳이 '태평로'를 힘주어 발음했는가. 이 책을 통하여 답을 조금 알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명나라 사신들의 여관이 있었고, 관아와 교육기관이 있었다. 또 한말에는 외교관들이 머무르는 호텔과 공관이 세워졌고, 현재도 언론사와 공공기관이 몰려 있다. 과히 서울의 중심으로서 자랑으로 삼을 만 하다. 헌데 길의 이름이 중국과 연관있다니, 조금 의외이면서도 흥미롭다.
ⓒ public domain (출처:労働経済社「映像が語る日韓併合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