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중국 문화 탐험(후지이 쇼조作)

[타이베이편]

p.186 타이베이라는 도시는 단수이허의 하사품이었다... 지구 온난기에 바닷물이 흘러들어 타이베이 분지는 한 번은 호수가 되나,5000년 전에는 바닷물이 들어와 다한시, 신뎬시, 지룽허의 3대 하천도 거의 현재와 같이 합류하여 단수이허가 되고 단수이 일대에서 바다로 흘러들어 가게 된 것... 

- 단수이허(淡水河)

책표지 출처: 교보문고

 

251 대만 신베이 시 단수이 구

벌써 5년전에 가본 단수이는 타이완 친구가 좋은 곳이 있다며 소개해 주어 가게 되었다. 사실 방문했을 때는 조금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뭔가 특별함을 기대했는데, 그냥 연인들이 산책하기에 좋은 강변. 책을 먼저 읽고 갔더라면 좀 더 의미가 있게 다가왔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먹은 타이완의 길거리 음식은 일품이었던 기억이 난다. 수안라펀(酸拉粉)이라고 하여 한국의 당면과 같은  투명한 면에 시고 매운 소스 육수를 부어 먹는 국수요리. 아직도 이름도 까먹지 않고, 혀를 녹일 듯한 강한 맛이 잊을 수 없다. 사진을 남겨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나오질 않는다.

그 맛에 흠뻑 빠져 1달 동안 타이완에 머물며 수안라펀만 찾아 다녔던 기억이 있다!

p.188 우선 타이베이의 젖줄, 단수이허를 따라 완화에서 다다오청까지 타이베이의 원점을 걷기로 한다. 거기에는 타이베이의 역사가 응축되어 있다... 완화 산책의 기점은 역시 룽산사일 것이다...1738년에 지어진 룽산사는 중국 대륙에서 이민 온 한족의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 

- 룽산사(龙山寺)

 No. 211, Guǎngzhōu St, Wanhua District, Taipei City, 대만 108 ‎

정말로 신앙의 중심이라는 말에 걸맞게 사람들도 많고, 향도 엄청나게 피워대고 있었다. 내가 타이베이에 도착하여 아마 처음 간 곳이 룽산사였던 것 같은데, (물론 버블티를 마시러 가는 김에 들르긴 했다.) 아직도 정확히 기억나는 것이 도무지 도시라고 말하기 어려운 풍경이 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런 표현 괜찮을 지 모르겠지만, 많이 꾀죄죄한 아저씨들이 절 앞에 모여 앉아 있었다. 거의 100명 넘게... 친구가 '어떤 사람들이다'라고 이야기 해준 것 같은 데 정확히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또 그들은 어떤 사람들은 장기 따위를 두고 있기도 했고,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옛날부터 이곳은 참배객으로 붐비어 상권이 발달해 있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 사람들 사이사이를 지나가 겨우 절 안에 들어갔고, 절 안에도 사람이 엄청나게 많아서 어렵게 어렵게 향을 피우고 소원을 빌고, 또 점괘도 보았다. 점괘가 나왔는데, 친구가 해석을 해주긴 했는데 역시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친구는 일본 유학시절에 만난 친구로, 우리 둘은 일본어로 대화를 나눴는데, 둘 다 일본어를 쓴 지 꽤 되어서, 적당한 선의 대화만 오고 갔던 것 같다. 그래서 철학적 의미가 담겨 있을 법한 점괘 내용은 설명이 되지도 않고, 또 들어도 이해도 안 되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엄청난 무리의 아저씨들이 모여있던 타이베이의 첫 기억이 매우 신기했나 보다. 아직까지 그날의 기분과 풍경이 정확히 머릿속에 그려진다.

 [상하이편]

 아르테코의 첨탑을이고 있는 바이러먼 무도장이 보일 것이다. 이백락의 문이야말로 30년대에 상하이 제일, 아니 극동 제일을 뽐내던 댄스홀이다... 

- p.77 '현대 중국 문화 탐험(후지이 쇼조 作)' 中

- 백락문(百乐门)

상하이시 징안구 위위엔로 218(上海市静安区愚园路218号)

 1920-30년대 극동에서 가장 화려했던 도시 상하이, 

그 중에서 가장 화려했던 곳 바이러먼 댄스홀.

 상하이 내 모던걸, 모던보이들이 모여들고 당시 상하이에 있던 많은 외국인들이 흥겨운 시간을 보낸 곳이라 한다. 

많이 리뉴얼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건물(좌측사진)과, 과거 바이러먼의 모습(우측 사진, 상해영시낙원)을 비교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