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영화] 송가황조 (宋家皇朝, 1997)
쏭칭링이 말년에 머문 집. 영화 속 쏭칭링은 죽기 전 늘 정치적으로 대립해온 동생 쏭메이링을 찾는다.
[중국 영화] 송가황조 (宋家皇朝, 1997) 中
- 송경령고거(宋庆龄故居)
아슬아슬한 시간대에 찾아가서 들어가보질 못했다. 사실 출발할 때만에도 들어갈 만해서 출발을 했다. 5시경에 닫는 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택시 아저씨가 우선은 베이징에 대한 장황한 설명으로 가는 길이 오래 걸렸다. 또 그렇게 설명하는 와중에 아저씨가 길도 잃었다. 그리곤 라오베이징인(북경 토박이)에게 쏭칭링고거가 아직 열려 있는 지 물어보겠다며 한 10분을 내려서 수다를 떨고 온다. '아마 닫았을 거라며' 그러곤 잃어버린 길을 다시 돌아가서 겨우 도착. 당연히 못 들어가는 타이밍이지.
중국 근현대 시기에 살았던 명문가의 세 자매. 쑹아이링, 쑹칭링, 쑹메이링.
“한 명은 돈을 사랑했고, 다른 한 명은 권력을 사랑했으며 또 다른 한 명은 국가를 사랑했다(一個愛錢、一個愛權、一個愛國)”는 말이 전해진다.
첫째 쑹아이링은 중국 최대 부자였던 중국은행 총재 쿵샹시와 결혼했고, 쑹칭링은 아버지뻘 되는 쑨원과 결혼했다. 쑹메이링은 장제스와 결혼하였다. 세 자매 모두 중국의 정계와 재계에 깊이 관여하며 활동했다. 쑨원과 장제스가 정치적으로 다른 길을 가면서 칭링과 메이링의 관계는 좋지 못했다. 하지만 국공합작, 항일전쟁 시기에 셋은 하나가 되어 국가를 위해 일했다.
세 자매 중 가장 중국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쑹칭링은 베이징에서 1963년부터 삶을 마감할 때까지 이곳 송경령고거에서 살았다.
이 곳은 본래 푸이의 부친 순친왕의 화원이었다고 한다.
영화를 통해 이들의 삶을 알게 되었다. 비록 영화가 매우 이들을 영웅시한다는 비판은 있지만, 세 명의 ‘여성’들이 중국이라는 국가 설립 시기에 활발하게 활동하며 일했다는 사실에 부러움과 놀라움을 느꼈다. 전쟁이 끝나고 현대국가가 설립되는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떠오르는 여성정치인이 누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크게 떠오르지 않는다.
영화에서 그려진 쑹칭링의 삶이 아닌, 실제 삶을 조금 더 알아보고 싶었는데, 들어가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