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즈 (Eze)

코트다쥐르 바다 위에 솟아 오른 

작은 마을

에즈 (EZE) 여행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주인공 차라투스트라가 산 속에서 은둔하면서 살다가 어느 날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내려와 ‘신은 죽었다’고 설파하며 여행하는 내용의 작품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이 책에 담았다. 

어릴 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한 번 펼쳤다가, 너무 철학적이고 어려워서 몇 장 읽다가 말았다. 이번 에즈여행을 다녀와서 다시 책장을 열었지만 또 몇 장을 읽다가 포기해버린… 그런 작품이다. 

 

니체는 남프랑스 에즈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영감을 얻었고, 이 곳에서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에즈라는 곳은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이토록 어려운 문학작품을 탄생시켰을까?’ 궁금증이 생겼다.

 

에즈는 니스와 모나코 사이에 위치한 인구 3,000명이 조금 안 되는 작은 마을이다. 해발 427m 지점 높은 절벽에 독수리가 둥지를 튼 모습을 닮았다 하여 ‘독수리 둥지(eagle's nest)’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13세기 로마의 침략을 피해, 혹은 14세기 흑사병을 피해 사람들이 산으로 올라가 살며 마을을 형성했다는 것이 마을의 유래다.

 

그대는 마치 바다 속에 있는 듯 고독 속에서 살았고, 그 바다가 그대를 품어주었지. 그런데도 아아, 그대는 뭍에 오르려 하는가? 아아, 그대는 다시 자신의 몸을 질질 끌고 다니려 하는가?

- p. 1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민음사)

니체의 작품 도입부에 차라투스트라가 ‘바다 속에 있는 듯 고독 속에 살았고, 그 바다가 품어주었다’는 표현이 나오는 데, 에즈는 정말 산마을을 바다가 품고 있는 듯한 형세다. 

 

사실 니스에서 에즈로 향하는 일은 쉽지 만은 않았다. 에즈행 버스를 타고자 segurane 정류장에 찾아가 서 있는데, 아무리 보아도 버스(82번, 112번)가 올 기미가 안 보인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한 차례 물어보니, 1월 1일이라 버스가 적게 운행한다고 한다. 조금 더 기다려 본다. 그래도 모나코 가는 버스(100번)만 올 뿐 오질 않는다. 

 

그 때 마침 굉장히 고급스러운 코트를 입고, 한 눈에 봐도 나보다 더 럭셔리한 대우를 받고 살고있을 법한 강아지 한 마리를 끈 노부인이 우리에게 ‘메 아이 헬프 유?’라며, 깔끔한 영어로 말을 건다. 노부인은 우리를 가르발디 광장 한 복판으로 데려간 후 ‘버스정류장이 지금 공사중이라 이곳이 에즈로 향하는 버스를 타는 곳일 것’라며, 한 차례 주변 가게 주인에게 확인까지 해준다.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가는 정류장이지만 (정말 정류장임을 나타내는 요소가 하나도 없다), 노부인의 인상이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닌 듯 하여 30-40분을 더 기다렸다. 숙소를 나온 지 1시간 반만에 에즈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INFORMATION

[니스에서 에즈 빌리지로 가는 방법]

니스 segurane 버스정류장에서 82번 혹은 112번 버스를 탑승한다. 

82번 버스는 배차간격이 1시간, 112번 버스는 배차간격이 2시간 이상이니 미리 시간표를 보고 가는 것이 좋다. 

하차하는 버스정류장 이름은 EZE village 정류장. 

니스에서 모나코로 가는 100번 버스도 에즈 기차역을 지나지만, 기차역에서 마을까지는 꽤 멀기 때문에 다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니스 시내 버스정류장 공사로 인하여 임시 정류장이 많다고 하니, 호텔 직원이나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정류장을 꼭 확인해야 한다. (2014년 1월 현재)

버스 홈페이지: http://www.lignesdazur.com

 

에즈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창 밖을 보던 동생이 ‘와 저런 데는 어떻게 사람이 살까?’라고 했는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버스운전수가 '에즈 빌리지'라고 소리친다. 그 풍경이 바로 우리가 내려야 하는 곳! 에즈다!

정류장에서 내리니 정말 버스 차창 밖으로 바라본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마을이 눈 앞에 솟아올라 있다. 만약 내가 소설가라면 에즈에서 판타지소설을 한 편 썼을 것 같다. 니체처럼 복잡한 생각 보단 환상적인 느낌이 드는 곳이니까. 

마을에는 ‘니체의 산책로(nietzsche's footpath)’라는 길을 하나 조성해 두었다. 나도 뭔가 철학적 생각이 떠오르진 않을까? 하는 어설픈 기대감에 잠시 걸어 보았다. 

 

차라투스트라는 홀로 산을 내려갔다.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나 숲 속에 다다랐을 때 한 노인이 갑자기 그의 앞에 나타났다.

- p. 1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민음사)

이 길을 걸으며 차라투스트라가 산을 내려오는 장면을 썼을려나? 상상하다가, 숲길을 살짝 돌았는데… 사람이 벤치에 앉아 있어 깜짝 놀랐다. 방금 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었는데, 갑자기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니체의 작품 속 내용처럼) 상대는 크게 놀라지 않은 듯 가벼운 미소를 보이곤, 다시 굉장히 깊은 생각에 빠져 들어가는 듯. 나는 발소리를 죽이고 걸어 나왔다.

에즈에 도착했을 때만해도 남프랑스 답지 않은 날씨에 속이 무척 상했다. 하지만 잔뜩 낀 구름 덕분에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없는 오묘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서두에 말한 듯 판타지 소설을 쓴다면 왠지 '하늘과 바다를 거꾸로 돌리니 다른 삶이 열린다….'라고 도입부를 쓸법한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에즈의 마을 곳곳에는 옷이나 장신구 미술작품을 파는 작은 상점이 있다. 관광객도 많은 편이 아니어서 골목골목을 여유롭게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마을 꼭대기에는 열대 정원이라고 하여, 다양한 선인장들을 심어둔 작은 공원이 하나 있다. 

INFORMATION

[에즈 열대정원 (Le Jardin d'Eze)]

주소: 20 Rue du Château, 06360 Èze, France

입장료: 1인 8유로

개관시간: 1월 9:00 ~ 16:00 / 2월 ~ 3월 9:00 ~ 17:00 / 4월 ~ 5월 9:00 ~ 18:00 / 6월, 9월 9:00 ~ 19:00 / 7월 ~ 8월 9:00 ~ 19:30 / 10월 9:00 ~ 17:30 / 11월 ~ 12월 9:00 ~ 16:30

홈페이지: http://eze-tourisme.com/fr/decouvrir-visiter-se-divertir/visiter-eze/le-village.html

정원에서 내려다 보는 바다풍경이 환상적이다. 올라갈 때는 구름이 잔뜩 끼어 찌푸렸는데, 정원을 한 바퀴 돌다 보니 갑자기 해가 ‘빵끗!’ 푸른 하늘이 보인다. 여행자의 아쉬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금방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니체는 이곳에서 쓴 작품을 통해 ‘신은 죽었다’고 말하는 자신의 분신 차라투스트라를 그려냈다. 인간이 산 위에 빗어낸 아름다운 마을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