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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다시그리기

처음 런던에 갔을 때, 연일 비를 만났다. 도시 전체가 색채를 잃은 듯 회색 빛으로 보였고, 일정 역시 공원 한 번 가보지 못하는 스케줄. 각종 유명하다는 건축물의 순회로 끝이 났다.

올해 함께 여행을 하기로 한 친구의 입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가 런던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굉장히 고민되었다. 고집을 피워 런던 다음 일정으로 헬싱키를 욱여 넣었는데, 회색 빛을 본 후 숲의 나라에서 눈을 정화하고 싶다는 오만한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런던여행에서 나의 착각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다시, 런던으로.

내가 꿈꾸는 런던의 하루 시간표는 이렇다. 아침에는 대영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는다....존 레논의 작곡 노트, 모차르트의 혼인계약서와 친필 악보까지, 그야말로 인류 문화유산의 A부터 Z까지 망라되어 있는 대영도서관의 공기를 흡수하는 것만으로도 왠지 조금은 총명해질 것 같은 행복한 예감으로,

오후 세 시쯤 되면 햇빛의 왕성한 혈기가 누그러지기 시작하니, 세인트제임스 공원이나 하이드 공원, 그리니치 공원이나 블룸즈버리 공원에 가서 담요 한 장 달랑 깔고 햇살 아래 낮잠을 즐긴다. 저녁이 되면 피카딜리 광장에 가서 멋진 뮤지컬이나 콘서트를 관람한다.

...밤이 깊어지면 동네 근처의 펍에 가서 에일이나 흑맥주를 한 잔 마시면서 친구와 함께 수다를 떤다... 다시 런던에 간다면, 이런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고 싶다.

- p.118-119 나만 알고싶은 유럽 TOP10 (정여울 作 | 홍익출판사) 中

정여울 작가의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에 이은 두번째 여행수필집 <나만 알고싶은 유럽 TOP10>은 겨울에 다녀온 프로방스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는 듯 하여 사본 책이다. 

런던여행을 앞두고, 책 속에 담긴 작가의 런던 이야기를 들으니, '아, 런던 여행자들은 이런 로망을 가지고 런던을 가는 구나!' (런던여행에 큰 기대가 없었던) 내게 하나의 지침서(?) 가 되었다.

하루 만에 위에 나열된 모든 것을 하진 않았지만, (이 내용대로 하루를 보내기엔 은근 하루가 짧다.) 그래도 이번 여행에서 하루에 하나씩 나누어 즐길 기회가 있었던 것 같다.

대영도서관에서 공부하기, 그리고 리젠트 운하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 오후 5시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대영도서관(British Library)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본래 대영박물관 안에 있던 도서관은 박물관 내에서 증축이 어려워지자 1973년에 영국국립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하고 1997년에 새로운 건물로 이전하였다. 장서량으로 미국의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과 전세계 1,2위의 다투며, 유고한 역사를 자랑한다. (1753년에 창립.) 

런던의 중심에서 북쪽에 위치한 리젠트 운하(Regent's canal) 라고 하는 길이 13.8km의 운하는 '리틀 베니스'라는 애칭을 가진 곳이다. 런던에 살고 있는 언니가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다고 하여 가보았는데, 런던의 다른 어느 명소보다 오래 기억될 것 같은 곳이었다.

19세기 초에 건설된 리젠트 운하는 이미 수송의 역할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지만, 베니스처럼 배를 띄워 관광코스로 운행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걸은 구간(빅토리아 파크 주변 루트)은 관광지라는 느낌보다 현지인들이 조깅을 하거나, 강아지와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바삐 이동을 하거나, 또 실제로 물위에 주거형 배를 띄워 살고 있는... 생활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는 장소였다.

배(House boat)에서 살아가는 삶은 어떨까?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더욱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하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잘 때 흔들흔들하여 숙면을 못 취하진 않을까? 전기는 어떻게 들여놓지? 화장실이랑 샤워실은 어떻게 되어있을까? 와~ 이 집은 정말 잘 꾸며 두었다! 등등

이런 나의 오지랖 넓은 생각을 읽힌 것일까? 오가는 사람들이 인사말을 건네기도 하고, 개를 산책시키는 할아버지는 "우리 개는 무서운 아이가 아니에요~ 걱정 말아요" 라며 싱끗 웃는다. '우왓 무섭게 생겼어~' 속으로만 생각했는데, 어떻게 읽혔지? 

INFOMATION

리젠트 운하 (Regent's canal)

: 제가 걸은 곳은 빅토리아 파크(victoria park) 부근 루트였습니다.

관련 홈페이지: https://canalrivertrust.org.uk/canals-and-rivers/regents-canal

http://www.visitlondon.com/discover-london/london-areas/central/regents-canal

대영도서관 (British Library)

주소: 96 Euston Rd London NW1 2DB

홈페이지: http://www.bl.uk/

뮤지컬 보기, 그리고 영화 '어바웃 타임'

뮤지컬 티켓을 싸게 구입하고자, 런던 레스터 스퀘어에 있는 'tkts'로 향한다. 되도록 '레미제라블'을 보고 싶었지만, 표를 구할 수 없어(도저히 살 수 없는 프리미엄석만 남아있어서), '맘마미아'를 보기로! 

적당한 자리가 남아있어서 40파운드 전후 가격으로 티켓을 샀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거의 7만원 정도되는 것이라... 망설여 졌지만, 평소에 거의 결정을 하지 않는 친구가 '보자! 봐 버리지 뭐!' 결정을 내려준 덕분에, 어느덧 앵콜곡을 목이 터져라 따라 부르며, 허우적허우적 대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알드윅가 노벨로 극장(Novello Theatre)에서 상연되는 뮤지컬 맘마미아는 마지막에 다같이 박수를 치고 함께 노래 부르며 즐길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좋았다. 다른 뮤지컬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왠지 레미제라블이나 오페라유령은 끝나고 다같이 노래 부르며 춤추기엔 너무 비장하지 않을까?

어찌 되었든, 여행에서 맘마미아를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밝아져서, 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친구의 핀잔을 들으며 'Thank you for the music'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돌아갔다.

사실 티켓을 사고, 뮤지컬 상연시간이 되기까지 2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런던의 소호(soho)를 둘러보기로 했다. 유럽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도 있고, 런던의 대표적인 번화가 중 한 곳인 소호. 번화가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굳이 이곳을 가본 이유는 런던이 오기 전에 본 영화 한 편 때문.

영화 '어 바웃 타임'에서 남주인공 팀 (돔놀 그라슨 分)이 메리 (레이첼 맥아담스 分)를 보고 첫 눈에 반한다. 그 장면이 촬영된 골목이 바로 런던 소호에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낮에 찾아가 로맨틱한 장면은 볼 수 없었지만, 골목 자체가 아기자기한 풍경이어서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