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uki Story
From Haruki
![]() 지난 1월에 일본 출판사 신쵸사(新潮社)에서 개최한 무라카미 하루키 (村上春樹)와 독자간의 대화 이벤트. ‘무라카미씨의 거처 (村上さんのところ)' http://www.welluneednt.com/ 독자가 질문을 보내면 하루키가 답변을 해주는 데 보름간 기간한정으로 진행되었다. 총 3만 통이 넘는 질문이 전달되었다고 한다. 얼마 전엔 아베 총리와 관련된 답변으로 구설수에 올라 한국에서도 신문보도가 되기도 했다. 질문을 보내고, 며칠 매일같이 사이트에 들어가서 기웃거리다, ‘내 질문까지는 답변 안 해 주겠지.’ 스스로 결정 짓고 슬퍼했다.
2월 24일 저녁 send : ‘Haruki Murakami’로부터 메일이 들어왔다. 깜짝 놀랐고, 내용을 읽곤 행복해졌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다. 나의 질문 핀란드의 도시, 헤멘린나에서 느낀 바가 궁금합니다. 해외에서 하루키 씨의 소설을 빠짐없이 읽고 있는 팬입니다. 3 년 전부터 회사에서 휴가를 얻으면, 하루키 씨의 소설 속 배경이 된 곳을 순례하는 것이 취미가 되어, 인생에서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최근 다녀온 곳은 핀란드 헤멘린나입니다만, 근교의 숲을 산책해 보기도 하고, 시내를 걸어 보니, 소설에 묘사된 것들을 직접 느껴볼 수 있어 무척 즐거웠습니다.
"가보고 않은 곳도 상상력을 발휘하여, 소설의 배경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헤멘린나도 소설을 쓴 후 방문하신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실제로 가본 후의 감상을 듣고 싶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하루키 씨의 소감이 신경 쓰여 잠을 이룰 수 없으므로, 무라카미 씨, 한마디 해주시면 기쁩니다. 하루키의 답변 헤멘린나. 네, 가보지 않고 썼습니다 (웃음). 지도만 보고 적당히 쓴 것입니다. 소설을 쓴 후 (출판되기 전에) 가보고, 여기 저기 둘러보니 상상과 거의 동일했기 때문에 안심했습니다.
단지 수목의 종류 정도는 달랐기 때문에, 그것은 다시 썼습니다. 그리고 제가 설정했던 호숫가의 도로가 없었기 때문에 그 부분도 수정했습니다. 광장 장면도 실제에 맞게 조금 수정했습니다.
가장 놀란 것은 제가 헬싱키에서 빌린 렌터카가 우연히 감색 폭스바겐 골프였던 것. 소설과 똑같았지요. "어!"하고 놀랐습니다. 이런 일이 있구나. 신기합니다. 답변을 수차례 읽고 또 읽고,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의 책장을 다시 넘기고, 답변과 문장을 비교하고, 헤멘린나에서 찍은 사진첩을 넘기며... 기분이 붕 뜬 상태로 일주일을 보냈다. 다녀온 후 조금 손을 봤다고 하는 장면 하나. 헤멘린나의 광장 중심지 광장에 면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크루아상을 하나 먹었다... 광장을 끼고 정면에 큰 교회가 있었다. 둥그런 녹색 지붕을 올린 땅딸막한 건물이었다. - p. 315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作 | 민음사) 中 실제로 헤멘린나 중심 광장에 면한 카페가 하나 있었는데, 난 카페 건너편에서 버스를 타려고 서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며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쳐다본 기억이... 하지만 꽤 오래 기다린 버스는 내가 가고자 하는 근교 숲에 가지 않는 버스였다. 반대편 정류장에 서 있었던 것. 다시 광장을 가로질렀다. 혹시 하루키는 광장 카페에서 쓰쿠루가 먹은 음식의 메뉴를 바꿨을까? 다녀온 후 조금 손을 봤다고 하는 장면 둘. 나무의 종류
대부분 자작나무고 소나무나 가문비나무나 단풍나무가 섞였다. 소나무는 수직으로 뻗은 적송이고, 자작나무 가지들은 아래로 축 늘어졌다. -p. 314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作 | 민음사) 中 정말 궁금했던 부분. 소설에서 자연의 묘사가 굉장히 상세히 되어 있기 때문에, 가보지 않고 (나의 경우 가봐도) 수종을 알고 묘사하기란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헤멘린나 근교 아울란코의 숲을 걸을 때, 붉은 빛이 도는 소나무가 아름다웠다. 물론 하얀 자작나무가 많았는데, 사진을 다시 넘겨보니 정말 자작나무 잎이 밑으로 축축 처져 있다. ▲ 포스트 표지 모델 고니 가족. 오른쪽 축 늘어진 자작나무 다녀온 후 조금 손을 봤다고 하는 장면 셋. 호숫가 도로 호숫가에 숲을 관통하는 비포장 도로가 있었다. 도로도 아니고 그냥 헤쳐 나가다 보니 자동차 바퀴 자국이 남은 길 아닌 길이었다. 두 줄기 바퀴 자국 사이에는 녹색 풀이 무성했다. -p. 318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作 | 민음사) 묘사된 비슷한 풍경을 몇 차례 만났다. 근교 숲을 혼자서 몇 시간을 헤맸기 때문에. 핀란드 헤멘린나는 출발할 때부터 기대한 장소였고, 직접 도시를 만났을 때 감동적인 상황을 몇 차례 만났다. 돌아와서 일에 지쳤을 때 이곳 숲 사진을 다시 넘겨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치유가 되곤 한다. 그리고 이번 하루키로 부터의 답장을 통해 헤멘린나는 내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생소한 도시, 헤멘린나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포스트를 참고해 주세요!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내가 여행을 떠난 해
* 여행기 내용 중 소설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지난해 여름, 어느 날 누가 내게 물었다.
“이번 일본여행 하루키 신작 읽고 다녀오신 거에요?”
“엥? 하루키 신작 나왔어요?”
“네… 다녀오신 루트가 똑같으셔서 소설 내용을 따라 다녀오신 줄 알았어요.”
작년 7월초에 다녀온 일본여행. 오사카 공항으로 들어가 비와호를 둘러보고 나고야로 가서, 하마마쓰를 거쳐, 도쿄에서 마무리한 일정으로 다녀왔다.
하루키의 신작이 나온 줄도 몰랐고 (또 그렇게 많이들 읽은 줄도 몰랐고), 역사기행으로 다녀온 것인데… 이야기를 듣자 마자 바로 소설을 사다가 읽으며 조금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주인공 쓰쿠루가 대학교 2학년 여름, 가장 친했던 친구 5명의 그룹으로부터 영문도 모른 채 퇴출당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친구들의 이름은 아카마쓰 게이(赤松慶), 오우미 요시로(青海悦夫), 시라네 유즈키(白根柚木), 구로노 에리(黒埜恵理).
아카(赤), 아오(靑), 시로(白), 구로(黑).
모두 한자에 '색(色)'이 들어 있고, 다자키 쓰쿠루(多崎つくる)의 이름에만 '색'이 들어 있지 않다.
16년이 지난 후 쓰쿠루가 자신이 그 그룹으로부터 퇴출당하게 된 이유를 찾아나서는, 즉 ‘잃어버린 것’을 되찾아가는 순례의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30살에 생을 마감한 친구 시로를 제외한 3명의 친구 한 명 한 명을 찾아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일본의 나고야, 하마마쓰, 도쿄, 그리고 핀란드의 헬싱키, 마지막으로 헤멘린나까지… 각 도시가 매우 인상 깊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과 함께 순례를 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5개 도시 중 순례의 마지막 친구 구로를 만나는 헤멘린나를 못 가본 것이 마치 홀로 색채가 없었던 (이름에 색깔이 있는 한자가 없었던) 다자키 쓰쿠루의 심리 마냥 아쉬웠다.
그리고 정확히 1년 뒤 올해 여름,
아쉬움을 해소할 여행의 기회가 찾아왔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내가 여행을 떠난 해
여행지도는 책 표지, 책과 함께 받은 하루키 월드 티켓 등의 이미지를 모티브로 하여 구성해 보았습니다.
첫번째 순례의 도시, 늘 돌아가야 할 곳이었던 나고야 나고야는 소설의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와 4명의 친구들이 학창시절을 보낸 곳이다. 가장 친했던 5명이 행복했던 시절을 보냈고, 쓰쿠루가 대학을 도쿄로 간 이후에도 늘 ‘돌아 갈 곳’으로 여겼던 도시다.
도쿄에 있으면서도 그는 한시로도 빨리 고향의 거리로 돌아가 잠시나마 친구들 얼굴을 보고자 했다. 그곳이 그가 돌아가야 할 장소였다. - p. 420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作 | 민음사) 中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있을 당시, 함께 공부하던 언니가 ‘나고야에 맛집이 많대~’라고 하여 저렴하지만 오래 걸리고 불편한 야코바스(아행버스)를 타고 가게 된 것이 나의 첫 번째 나고야행이었다. 정말 맛있는 음식 천국이었다. 히쓰마부시, 미소카츠, 미소니코미우동 등 배가 빵빵 해져 돌아왔다. 나에게도 나고야는 늘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행복한 기억의 도시였다.
▲ 나고야성에서 바라본 시내전경
그리고 가족들과 다시 가서, 히쓰마부시를 함께 먹었다. 히쓰마부시(ひつまぶし)란, 장어를 특제소스에 구워 잘게 잘라 밥 위에 얹어 나오는 장어덮밥이다. 먹는 방법이 독특하여 유명한데, 동그란 그릇에 들어 있는 장어덮밥을 넷으로 갈라, 한 쪽은 그냥 먹는다. 다른 한 쪽은 김과 파, 와사비를 얹어 같이 먹는다. 세 번째는 밥과 장어, 와사비 등을 차에 말아서 먹는다. 네 번째는 위에 세가지 방법 중에서 가장 맛있는 방법으로 먹는다. 또 다시, 가족과 행복한 추억을 되새겼다.
쓰쿠루는 어릴 때부터 역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 도쿄의 대학으로 진학했고, 졸업 후 철도회사에 취직하여 역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간다. 작년에 방문했을 때 우연히도, ‘나고야역’과 관련된 인상을 하나 가지고 돌아왔다.
나고야에 어둠이 내려앉던 즈음 나고야역에 도착하니,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짐도 많은데 호텔까지 우산 쓰고 어떻게 걸어가!’ 잔뜩 짜증이 난 상태였다. 투덜투덜 거리며 우산을 펴다가 우연히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고야역이 장관이다.
안개가 짙게 끼어 실재하지 않는 도시와 같이 묘한 느낌이 든다. ‘뭐지? 이 스산함은?’ 나는 그렇게 한 10분 정도 나고야역을 바라보며, 비를 맞은 채, 또 셔터를 누르며, 서 있었다.
두번째 순례의 도시 빗소리, 그리고 음악이 흐르는 하마마쓰 ![]() 쓰쿠루는 대학교 2학년 여름, 영문도 모른 채 5명의 모임에서 퇴출당하고, 5명 중 한 명이었던 시로(시라네 유즈키)는 30살에 하마마쓰에서 누군가에 교살당한다. 살해한 사람이 누군지, 이유는 누구도 모른다. 또 나고야에 살던 시로가 하마마쓰로 가게 된 연유도 모른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방문하게 된 하마마쓰에서는 내내 비를 만났다. 그렇게 시골 같지도, 그렇게 도시 스럽지도 않은 하마마쓰에서 나는 음악과 관련된 명소 두 곳을 가게 되었는데, 소설 속 시로는 피아노를 아주 잘 쳤던 소녀로 그려져 있다.
내가 방문한 곳은 하마마쓰의 악기박물관과 오르골박물관. 하마마쓰는 원래 악기회사 야마하의 본고장이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맞이해준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잔디인형. 자세히 보면…?
피아노 모양으로 된 하카마를 입고 있다.
"응, 2년 가까이 살았을 거야. 혼자 살면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지. 야마하 음악 교실에서 일했을 거야. 왜 일부러 하마마쓰로 갔는지, 자세한 사정은 잘 몰라. 나고야에서도 그 정도 일은 충분히 찾을 수 있었을 텐데."
- p.236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作 | 민음사) 中
하마마쓰에서 유독 기억에 남은 장면이 하나 있다. (돌아와 소설을 읽고는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숙소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굵게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스쳐간 장면.
‘어린이들이 많이 살까?’ 싶은 동네 풍경 속에, 야마하 음악교실이 꽤 크게, 또 최신식 건물로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와~ 저기 다니는 애들은 좋겠다. 나처럼 피아노를 눈물 질질 짜면서 연습하진 않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깔끔하고 세련된 건물. 시로는 하마마쓰에서 교살당하기 전까지 야마하 음악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하마마쓰역에서 나와 호수로 향하는 길 위에서, 나는 야마하 음악교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세 번째 순례의 도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헬싱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으니 벌써 저녁이었다. 그러나 창밖은 대낮처럼 밝았다. 하늘에는 하얀 반달이 둥실 떠올랐다. 오래 쓴 속돌 같았다. 누군가 그걸 하늘로 집어 던졌고, 어떤 이유로 그냥 하늘에 턱 걸려 버린 것이다. - p. 296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作 | 민음사) 中
헬싱키의 백야는 신기했다.
▲ 헬싱키의 밤 11시반.
쓰쿠루는 핀란드 남자와 결혼한 구로를 만나기 위해, 헬싱키로 향한다. 헬싱키에 살고 있는 구로는 여름휴가로 그 도시에 머물지 않고 있었다. 쓰쿠루는 여자친구에게 소개를 받은 한 핀란드 여성의 도움으로 구로 가족의 소재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헬싱키에서 헤멘린나로 갈 준비를 한다.
▲ 헬싱키의 에스플라나디 공원.
헬싱키에서 구로를 만날 긴장감에 잠겨 있던 쓰쿠루의 마음처럼, 나 역시 헤멘린나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어 있었다. 따라서 헬싱키에 도착한 첫 날 밤은 그런 설렘과, 11시반까지도 환한 백야와, 적응하지 못한 시차 탓으로 잠 못 이루었다.
▲ 호텔에서 내려다 본 헬싱키 시내풍경
네 번째 순례의 도시 전원 풍경이 사람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영문 모를 슬픔 헤멘린나
자작나무 가지 사이로 호수가 보였다. 작은 방파제 같은 게 있고, 겨자색 플라스틱 보트가 한 대 묶여 있었다. 낚시용 작은 보트였다. 나무들에 둘러싸인 아담한 목조 오두막이 있고, 지붕에는 사각형 벽돌 굴뚝이 솟아올랐다. -p. 318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作 | 민음사)
소설 속에서 구로가 가족과 휴가를 보내는, 헤멘린나 근교 숲. 아마 아울란코 부근이 아닐까 짐작해 보았다. 헤멘린나 시내에 도착하자 마자 버스로 20분 거리에 있는 아울란코행 버스를 탔다.
프란츠 리스트가 여행의 기억을 곡으로 풀어낸 작품집 '순례의 해' 중 '르 말 뒤 페이(Le Mal du Pays).'
쓰쿠루는 친구들 한 명 한 명을 만나 이야기를 듣곤, 만남의 마지막 즈음에 자살한 시로가 즐겨 연주하던 "르 말 뒤 페이를 기억하는지" 묻는다. 르 말 뒤 페이란, 우리말로 '향수' 혹은 '멜랑콜리'로 번역되곤 하는데, 정확한 의미는 ‘전원 풍경이 사람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영문 모를 슬픔’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르 말 뒤 페이」. 조용한 멜랑콜리가 어린 그 곡은 그의 마음을 감싼 형체 없는 슬픔에 조금씩 윤곽을 그려 준다. 마치 허공에 잠겨 든 투명한 생명체의 표면에 수없이 많은 가느다란 꽃가루가 달라붙어 전체 형상을 눈앞에 조용히 떠오르게 하는 것처럼... -p.289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作 | 민음사) 中
숲은 ‘르 말 뒤 페이’의 의미를 충분히 품고 있는 듯 했다.
혼자 걷고 있는 나는 괜히 울컥 했다.
신경 써야 하는 사람도 없고, 여비가 크게 부족하지도 않았고, 속이 조금 불편했지만 꽤 걸을 수 있는 체력까지 있었다. 백조와 새끼들이 길을 건너고 있었다. 붉은 얼굴을 한 핀란드 가족들은 그들이 지나가기를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뒤로는 호수가 반짝거리고 있었고, 숲이 울창했다.
그곳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감정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영문도 모르게 슬펐다.
파란 하늘이었던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무서운 속도로 몰려든다.켜켜이 쌓여 회색, 검은색으로 변해간다...
숲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타워에 오르니, 검은 숲이 되어있다. 하아.
이번 여행 열흘 동안 단 한 순간도 날씨가 흐린 적이 없었다. 계속되는 맑은 날씨, 푸른 하늘, 눈부신 풍경에, 너무 운이 좋은 것 같아 무서운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순간들이 계속 되다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매몰차게 몰려든 구름.
다시 돌아보니, 헤멘린나는 순례의 마지막 친구 구로(黑)를 만나는 도시다. 난 검정 숲을 마지막으로 만났다.
연관 짓기 놀이를 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마지막 순례의 도시 외로운 도시 도쿄
쓰쿠루가 도쿄로 가게 된 것은 역을 만들겠다는 목표 때문이었다.
도쿄라는 도시는 그에게 우연히 주어진 장소였다. 예전에는 학교가 있던 곳이고 지금은 직장이 있는 곳이다... 도쿄라는 대도시는 그렇게 익명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상적인 장소였다. - p. 420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作 | 민음사)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도쿄를 갔을 땐, 그 화려함에 혹했다. 밤에 반짝반짝 불이 들어오는 오다이바 관람차와 레인보우 브릿지, 긴자의 간판들. ..
▲ 일본의 첫인상
그러나 대학생이 되어, 그 화려함은 이미 서울에도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도쿄는 매력을 잃어갔다. 그 이후 일본에서 1년을 보낼 때도, 또 여행으로도 몇 차례 방문해 보았지만 어느 곳도 크게 마음에 들지 않아, 계속해서 도쿄의 다른 모습을 찾기 위해 돌아다닌 것 같다.
쓰쿠루는 JR 신주쿠역에 가서 마냥 앉아 있는 것이 취미다. 신주쿠역 코인락커에 맡긴 짐을 찾지 못해 오랜 시간 사람들이 치이며, 헤맨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취미. (신주쿠역은 코인락커가 여러 군데 있었다.)
작년엔 신주쿠의 기노쿠니야에 가서 사야 할 책이 있었으므로 가게 됐다. 수많은 사람들을 토해내고 삼키는, 누구 한 명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는 도시, 그리고 역. 그 외로운 곳, 한복판에 서 있어 보았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순례를 떠난 해' 속에 등장하는 도시 순례의 지도를 꼭! 완성시켜 보고 싶었습니다.
다른 포스트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듯, 어릴 때부터 저와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것들에 고집스러운 집착 증세가 있습니다.
그 연관성이란 것이 때론 굉장히 유치하고, 타인의 공감을 못 얻을 때도 많지만, (거기에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우연의 일치일 수 있지만...)
작년에 간 일본행이 우연히 소설 속 도시들과 겹친다는 이유 하나로, 1년에 내내 '소설 속 도시들을 꼭 순례해 봐야지' 하며 유난을 떨었습니다.
다자키 쓰쿠루는 왜 퇴출당할 수 밖에 없었는 가 궁금해 하며, 책장 한 장 한 장을 넘긴 마음으로,
다녀온 도시들의 사진 한 장 한 장을 넘겨 보며, 그 공간이 선사해준 추억을 되새길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늘 감사 드립니다. |
하루키와 요리 (dish)
** 이 글은 하루키의 소설과 수필 몇 권을 읽고,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뽑아 구성한 것입니다. (저는 비교적 최근에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에 빠져든 평범한 독자입니다. 최근에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하루키의 모든 작품을 읽진 못했습니다. 또 평범한 독자이기 때문에 문학적으로 작품을 평가할만한 역량은 되지 않습니다. 또 빠져들었기 때문에 다분히 하루키와 그의 작품에 우호적입니다. 스포일러가 싫으신 독자 분들은 해당 글을 읽지 않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몇 개 문장을 발췌했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데 방해가 되실 수 있습니다. 또 기억력이 많이 좋은 편은 아닙니다. 혹여나 제가 잘 못 기억하고 있거나, 제멋대로 해석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루키 소설에는 맛있는 식사가 등장한다. 맥주 한 잔을 마셔도 안주가 대단하다. 또 허기가 지면 그냥 '치즈를 뜯어 먹는 것'이 아니라, '까망베르 치즈를 크래커에 발라 먹는다.' '샐러리를 마요네즈에 찍어 먹는다.' 식재료가 심상치 않다. 요리과정 묘사도 꽤 진지하고, 자세하다. 소설을 읽고만 있어도, 그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 또 맛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만든다. ![]()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p.83 "그러네요. 정말 맛있습니다.”… 샌드위치는 내가 정한 기준선을 가볍게 넘어서고 있었다. 빵은 신선하고 탄력 있었고, 잘 드는 청결한 칼로 자른 것이었다. 계산사 주인공이 작업을 할 때, 의뢰인의 손녀가 만들어 온 샌드위치에 대한 평가다. 샌드위치에 있어서도 이렇게 까다롭다니… 궁금하다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p.158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나는 간단한 저녁 식사를 만들었다. 우메보시를 갈아 그것으로 샐러드드레싱을 만들고, 정어리와 유부와 산마 튀김을 몇 개 만들고, 셀러리와 쇠고기찜을 준비했다... 데친 명아주 나물을 만들고, 깨를 버무린 강낭콩을 만들었다. 간단한? 요리가 아닌 것 같은데?주인공은 도서관 사서에게 '일각수'에 대해 조사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저녁식사를 대접한다. 사서는 위확장증. 이렇게 준비된 요리에 밥과 된장국을 더먹고, 프랑크푸르트 소시지와 초콜릿 케이크까지 먹어 치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배가 정말 고파졌다. 하지만 하루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식재료들을 훑어보면 평소에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사기에, 만들어 먹기엔 꽤 부담스러운 재료, 요리법이다. ![]() <이윽고 슬픈 외국어> p.225 내 가게에서는 롤 캐비지를 내놓고 있었기 때문에 아침부터 자루에 가득 들어 있는 양파를 잘게 다져야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많은 양파를 눈물도 흘리지 않고 단시간에 재빨리 썰 수 있다. 하루키 소설 속에 맛있는 음식향이 나는 것은, 그가 소설가가 되기 전 재즈바를 경영했기 때문일 것이다. 바에는 안주도 필요하고, 직접 재료를 준비하여 요리를 했다고 하니까. ![]()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p.148 “우리 집에서 만들어낸 독창적인 칵테일이 몇 가지 있긴 하지. 가게 이름과 같은 ‘로빈스 네스트’라는 게 있는데 그게 제일 반응이 좋아…” 소설 속에서만 등장하는 맛 볼 수 없는 칵테일이지만, 구미를 당긴다. 왠지 하루키가 운영했던 재즈바에는 이런 맛있는 칵테일이 많았을 것 같다. ![]() ![]() <먼 북소리> & <댄스 댄스 댄스> p.341 <댄스 댄스 댄스>에 하와이 장면이 나오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소설을 쓰면서 나는 무척이나 하와이에 가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하와이의 장면을 쓰다 보면 아주 조금은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열대의 태양 아래서 뒹굴며 피나콜라다를 마시는 것 같은 기분이다. 하루키의 유럽 체류 에세이 먼 북소리를 읽으면서 <댄스 댄스 댄스>에 하와이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하길래, 바로 사서 읽어 보았다. (나 역시도 한국의 매서운 추위에 몸서리 치고 있었기 때문) p.63 나는 이따금 바다에 들어가 헤엄을 치고, 바닷가의 스탠드바에서 차가운 피나 콜라다를 마셨다... 거대한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며 수평선이 토마토소스처럼 붉게 물들고, 선셋 크루즈의 선박이 돛대에 불을 켜기 시작할 때까지... <댄스 댄스 댄스>를 읽으면 피나콜라다가 엄청 자주 등장한다. 주인공은 13살 어린 여자애와 여러 이야기로 얽히면서 함께 하와이에 가게 되는데, 하와이에 머물며 계속해서 피나콜라다를 마신다. '소설 안에서 주인공이 마신 피나콜라다는 총 몇 잔일까요?' 문제를 내고 싶을 정도. 13살 여자아이가 마셔보고 싶다 하자, 새로 한 잔 주문하여 권하기도 한다. (이 한 잔이 해당 문제의 정답에 크게 좌우하겠군) <댄스 댄스 댄스>에는 블러디 메리라는 칵테일도 꽤 자주 등장하는데, 역시 기묘하게 얽힌 호텔 여종업원이 마시는 칵테일이다. 토마토주스와 보드카를 베이스로 만든 칵테일이라고 한다. 나야 뭐... 바, 칵테일 이런 곳과 잘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번 연말에 기회가 있으면 한 잔 마셔봐야겠다! 피나콜라다, 블러디 메리. ![]() <상싱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 "맛있어 보이네, 그거." "맛있어. 버섯 오믈렛과 완두콩 샐러드야." ... "뭘 주문했는데?" "마카로니 그라탱." "마카로니 그라탱도 괜찮아." 학교 앞 식당에서 와타나베와 미도리의 첫 만남. 와타나베는 조용하고 차분하다는 레스토랑에서 매우 맛있다는 오믈렛을 먹고 있다. 미도리는 갑자기 와타나베에게 말을 걸어 온다. 오믈렛과 그라탕, 그리고 둘의 만남. 산뜻함이 느껴진다. ![]() <하루키 일상의 여백> p.57 요코하마의 중국인 거리는 도저히 걸어다닐 수가 없고, 중국인 거리는커녕 슈마이 냄새를 맡는 것이 싫어 요코하마 역에서 내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매우 심각한 알레르기다. 맛있는 음식을 글로 그려내는 데 탁월한 하루키가 중국음식 알레르기가 있다고 한다. 종류가 대단한 중국음식을 못 먹다니... 또 내가 생활했던 요코하마에 내리기 조차 꺼린다니... 매우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야 뭐 그냥 일개 팬일 뿐이지만, 이 책에 배꼽잡고 웃을 만한 문구가 하나 나온다. 그의 아내는 중국음식을 좋아하는데, 언제는 한 번 라면이 먹고 싶어서 혼자 라면집에 갔다가. 옆에 앉아있는 젊은 여자들로부터 "나이가 들어서도 혼자 라면을 먹으러 오는 여자만은 되고 싶지 않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와서 엄청나게 화를 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루키가 남긴 한 마디가 너무나도 재치 있다. p.58 그러니까 혼자서 묵묵히 라면을 먹고 잇는 40대 여성을 어딘가에서 보더라도 너무 흉보지 말아 주길 바란다. 인간에게는 각자 여러가지로 개인적인 사정이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분풀이는 반드시 나에게 오니까 말이다. |
하루키와 직업 (job)
** 이 글은 하루키의 소설과 수필 몇 권을 읽고,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뽑아 구성한 것입니다. (저는 비교적 최근에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에 빠져든 평범한 독자입니다. 최근에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하루키의 모든 작품을 읽진 못했습니다. 또 평범한 독자이기 때문에 문학적으로 작품을 평가할만한 역량은 되지 않습니다. 또 빠져들었기 때문에 다분히 하루키와 그의 작품에 우호적입니다. 스포일러가 싫으신 독자 분들은 해당 글을 읽지 않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몇 개 문장을 발췌했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데 방해가 되실 수 있습니다. 또 기억력이 많이 좋은 편은 아닙니다. 혹여나 제가 잘 못 기억하고 있거나, 제멋대로 해석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루키 소설에는 누구나 막연하게 한번쯤은 상상해보았을 만한 직업이지만, 생동감있고 그럴싸하게 글로 풀어내긴 힘든 직업이 많이 등장한다. 또 일반사람들의 삶처럼, '어쩌다 보니 이 일을 하고 있네?'라기 보단, 어린 시절부터, 또 어떤 강한 원인에 의해서 직업을 갖고 있는 캐릭터들이 있다. ![]()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p.203 하지만 나는 계산사를 그만둘 생각이 없다. ‘조직’과 마찰만 빚지 않는다면, 개인으로서 계산사만큼 자유롭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은 달리 없으며 수입도 좋다. 잘 상상이 안 되는 직업이다. 계산사와 그에 상대하는 기호사라는 직업이 등장하는데, 정보화 시대에 인간의 뇌를 활용하여 정보가 유출되지 않게 숨겨 보관하는? 직업이다. 읽고 있으면 재미 있다. 돈까지 많이 번다니.. 한 번 해보고 싶기도 하고! 그런데... 하루키 소설에 나오는 독특한 직업들 치고, 돈 적게 버는 직업은 없는 듯. ![]() <1Q84> 여주인공 아오마메는 가정폭력을 당한 여성들의 상대 남성을 흔적 없이 죽이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살인마인데, 책을 읽다 보면 아오마메라는 인물에 대해 선과 악, 그 어떤 평가도 내릴 수가 없다. 하루키 필력이 여기서 나오는 듯하다. 어떤 것도 독자가 마음껏 결론 지을 수 없는 인물과 사건, 그리고 세계…. (2권) p.68 아오마메는 아마도 가까운 시일 내에 또 한 명의 사내를 살해하고, 얼굴을 바꾸고 이름을 바꾸고 다른 땅으로 옮겨 존재를 지우게 된다. p.109 그런데 지금은 입시학원 계약직 강사이고, 이런 건 제대로 된 직업이라고 할 수도 없다. 분명 속편한 일자리이고, 혼자 살기에 그리 부족할 것 없는 수입이지만.. 남주인공 덴고는 수학교사이자, 고스트라이터다. 계약직 강사이지만, '그리 부족할 것 없는 수입.' 하루키 소설에는 역시 돈 적게 버는 직업은 없다.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p. 23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역을 좋아한 거구나.” 어린 시절부터 역을 좋아해서 역을 만드는 일을 하고 살아가는 주인공 쓰쿠루. 친구들 이름에 ‘색’이 들어갔지만 본인의 이름에만 ‘색’이 들어가 있지 않아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다. 하지만 색채가 없다고 하기에는 조금 독특한 취미, 기호 이지 않나 싶다. (기차도 아니라, 역을 좋아한 다는 것은…) |
하루키와 신체 (body)
** 이 글은 하루키의 소설과 수필 몇 권을 읽고,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뽑아 구성한 것입니다. (저는 비교적 최근에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에 빠져든 평범한 독자입니다. 최근에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하루키의 모든 작품을 읽진 못했습니다. 또 평범한 독자이기 때문에 문학적으로 작품을 평가할만한 역량은 되지 않습니다. 또 빠져들었기 때문에 다분히 하루키와 그의 작품에 우호적입니다. 스포일러가 싫으신 독자 분들은 해당 글을 읽지 않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몇 개 문장을 발췌했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데 방해가 되실 수 있습니다. 또 기억력이 많이 좋은 편은 아닙니다. 혹여나 제가 잘 못 기억하고 있거나, 제멋대로 해석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루키 소설에는 몸이 조금 불편한 캐릭터가 자주 그려진다. 평소에 잘 생각해보지 않은 육손이라든지, 손가락이 하나 없는 여성이라든지... 하지만 그런 신체에 대한 묘사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 캐릭터에 신체의 불편함이 없다면 오히려 더 '불완전'했을 느낌까지 준다. 거부감 없이 묘사하는 조금 특별한 신체의 모습들. 하루키 소설 또 하나의 키워드다.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p. 78 “응, 여덟 살까지는, 그해에 난 손가락이 아홉 개가 되었거든. 그 이후로는 아무도 혼동하지 않아.”…. “여덟 살 때 진공청소기의 모터에 새끼 손가락이 끼어서 잘려 나갔어.” “지금은 어디에 있지?” “새끼 손가락 말이야” “잊어버렸어, 그런 걸 물은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하루키의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남자주인공은, 레코트점에서 일하는 한 여자를 만나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되는데, 그 여자는 손가락 하나가 없다.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p. 251 “그럼요, 정말 으스스했죠. 깨끗한 천 주머니에 조그만 마요네즈 병 같은 것이 들었는데, 작은 손가락 두 개가 액체 위에 떠 있는 겁니다…” 역에서 일하는 쓰쿠루는 한 역장으로부터 분실물 중 ‘손가락’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는 손가락이 잘린 여성이 등장하는 데, 혹시 그 여성의 손가락인가? 잠시 고민했지만 (내가 왜 이런 것을 고민하지?) 2개가 발견되었다고 하여, '아! 그 여성의 손가락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 <태엽 감는 새> p.33 “친척 중에 손가락이 여섯 개 있는 사람이 있어요.” p.35 “유방이 네 개 있다면?” “그런데 아까 얘긴데,아저씬 손가락이 여섯 개인 여자라면 결혼해도 괜찮은데 유방이 네 개인 건 싫다고 그랬죠?” 다시 기묘한 신체 이야기… 오카다는 근처에 사는 한 여학생과 친분이 쌓이게 되는데, 그 여자아이가 오카다에게 건넨 질문이다. 6개의 손가락과 4개의 유방. 혹시 <색채가 없는 다자키…>에 나오는 손가락이 메이의 친척의 것이 아닌가? (어느샌가부터 나는 하루키 소설 속 잃어버린 손가락 주인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p. 90 나는 연말, 시부야의 혼잡한 인파 속에서 시마모토와 똑 같은 모습으로 다리를 저는 여자를 보았다. 다리는 저는 것을 빼면 완벽한 외모, 센스있는 옷차림, 말이 통하는 여성. ‘완전한 사랑'을 완성시킬 수 있는 여성으로 그려진 시마모토. 하지메에게는 그 걷는 모습 조차 미워보지 않았다. |
하루키와 스포츠 (sports)
** 이 글은 하루키의 소설과 수필 몇 권을 읽고,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뽑아 구성한 것입니다.
(저는 비교적 최근에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에 빠져든 평범한 독자입니다. 최근에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하루키의 모든 작품을 읽진 못했습니다. 또 평범한 독자이기 때문에 문학적으로 작품을 평가할만한 역량은 되지 않습니다. 또 빠져들었기 때문에 다분히 하루키와 그의 작품에 우호적입니다.
스포일러가 싫으신 독자 분들은 해당 글을 읽지 않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몇 개 문장을 발췌했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데 방해가 되실 수 있습니다. 또 기억력이 많이 좋은 편은 아닙니다. 혹여나 제가 잘 못 기억하고 있거나, 제멋대로 해석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 하루키의 취미는 달리기와 수영이다.
그의 소설 속에는 유독 운동은 (기본적으로) 잘하는 남자 주인공이 많다.
또 운동을 좋아하기 때문에 대부분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다.
![]() <하루키 일상의 여백>
에세이집 <하루키 일상의 여백>에는 그가 미국 생활을 하면서, 스포츠를 즐긴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는데,
p.105 달리기나 수영을 하는 것 외에, 최근에는 대학 동료인 찰스와 함게 일 주일에 한 번 스쿼시를 하게 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달리기나 수영과 같은, 묵묵히 혼자서 계속할 수 있는 스포츠만 해왔다...
스쿼시는.. 마음이 내킬 때 혼자서 조금식 연습을 할 수도 있어서 부담도 없는 편이다.
이런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의 소설 속 남자주인공들이 실제 하루키와 닮은 듯? 하루키가 되고 싶은 남성 캐릭터 인 듯? 하다.
그의 소설 속 남자 주인공들은 대부분 '본인은 그렇게 느끼지 않음'에도 주변인들은 '멋있다' 여긴다.
또 그들 대부분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도, '혼자서' 멋있다. (특히 혼자서 즐기는 스포츠에 열중하고 있으니까...)
![]() <하루키 하루키>
하루키가 소설 집필을 결심하게 된 것은 야구장에서 였다.
p.35 전에도 밝힌 적이 있지만, 내가 갑자기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진구 구장의 외야석에서 였다... 스왈로스 구단 창단 이래 29년째에 이르러 처음 거둔 우승이었는데, 나도 마침 스물아홉 살이었다. 그 때 쓴 소설로 나는 문예지의 신인상을 받았다.
물론 <하루키 하루키>의 작가 히라노 요시노부는 야구장 에피소든 작가의 '자신 신격화' 장치라고 말한다.
나는 그래도 상관 없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잘 된 일들은 항상 그 위에 더 아름다운 미사여구를 덮어 미화시키기 때문이다.
나 같이 겨우 대학에 붙고, 회사에 입사하고 같은 작은 일들도 '신격화'시켜 버리는 데,
하루키 아닌가? 베스트셀러 작가, 그리고 계속해서 노벨상 후보자로 거론되는 인물인데!
![]()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권) p.119 프로야구는 잘 몰랐기 때문에 편의적으로 지금 공격하고 잇는 팀을 응원하고, 수비를 하고 있는 팀을 미워하기로 했다... 투 아웃 주자 2루에서 안타가 터지긴 했지만, 주자가 당황하는 바람에 2루와 3루 사이에서 발이 걸려 넘어져...
이 장면.. 과연 프로야구를 잘 모르는 주인공이 할 만한 이야기인지? 택시에 타서 소리로 야구중계를 들으면 이 정도로 야구정황에 대해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역시, 또 '잘 모르지만'이라고 하지만 '잘 아는' 남성이 아닌가?
![]() <이윽고 슬픈 외국어>
p. 232 이 원고를 쓰는 도중에 야쿠르트가 세이부 라이온스를 꺾고 일본 시리즈에서 우승을 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십오 년 만에 일본 최고가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첫 소설을 쓴 때가 야쿠르트가 우승했던 해다...
야쿠르트 구단 창설 이십구 년 만의 첫 우승이었고, 나도 정확히 스물아홉 살이었다.
하루키는 이미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15년만의 우승보다 훨씬 전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버렸으니,
그가 29세 때 야쿠르트의 우승을 경험하고, 그 이후부터는 야쿠르트팀과 하루키의 행로가 많이 달랐다.
야쿠루트 성적이 어떠했는 지 궁금하여 검색해보았다.
검색하던 중 궁금증 하나 발견, 하루키는 고베, 간사이 출신인데 도쿄에 연고를 둔 야쿠르트의 팬이구나? (야쿠루트 시즌 성적)
1950년-7위, 1951년-5위, 1952년-5위, 1953년-6위, 1954년-5위, 1955년-5위, 1956년-4위, 1957년-4위, 1958년-4위, 1959년-4위,
1960년-6위, 1961년-3위, 1962년-6위, 1963년-4위, 1964년-5위, 1965년-6위, 1966년-5위, 1967년-5위, 1968년-4위, 1969년-5위,
1970년-6위, 1971년-6위, 1972년-4위, 1973년-4위, 1974년-3위, 1975년-4위, 1976년-5위, 1977년-2위, 1978년-1위 (하루키 등단 해), 1979년-6위,
1980년-2위, 1981년-4위, 1982년-6위, 1983년-6위, 1984년-5위, 1985년-6위, 1986년-6위, 1987년-4위, 1988년-5위, 1989년-4위,
1990년-5위, 1991년-3위, 1992년-1위, 1993년-1위(슬픈 외국어를 집필하던 해), 1994년-4위, 1995년-1위, 1996년-4위, 1997년-1위, 1998년-4위, 1999년-4위,
2000년-4위, 2001년-1위, 2002년-2위, 2003년-3위, 2004년-2위, 2005년-4위, 2006년-3위, 2007년-6위, 2008년-5위, 2009년-3위,
2010년-4위, 2011년-2위, 2012년-3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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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와 커피 (coffee)
** 이 글은 하루키의 소설과 수필 몇 권을 읽고,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뽑아 구성한 것입니다. (저는 비교적 최근에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에 빠져든 평범한 독자입니다. 최근에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하루키의 모든 작품을 읽진 못했습니다. 또 평범한 독자이기 때문에 문학적으로 작품을 평가할만한 역량은 되지 않습니다. 또 빠져들었기 때문에 다분히 하루키와 그의 작품에 우호적입니다. 스포일러가 싫으신 독자 분들은 해당 글을 읽지 않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몇 개 문장을 발췌했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데 방해가 되실 수 있습니다. 또 기억력이 많이 좋은 편은 아닙니다. 혹여나 제가 잘 못 기억하고 있거나, 제멋대로 해석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루키 소설을 읽으면 나도 꼭 커피가 마시고 싶어 진다. 매일 출근길 지하철(지옥철?)에서 나는 항상 '아이스라떼를 마실까,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실까' 고민하는데, (이상하게 따뜻한 라떼, 차가운 아메리카노는 잘 안마신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면서 출근하는 날이면, 꼭 카페에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게 된다. 갓 추출한 짙은 커피향을 맡고 하루를 시작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커피향을 맡는 찰나의 순간은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 들기에 ![]()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p.60 “가능하면 뜨거운 블랙커피가 들어 있는 보온병과 얼음물을 준비해주세요.” 계산사라는 독특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은 작업을 할 때면 보온병에 든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한다. <색채가 없는…>의 쓰쿠루처럼 ‘뜨거운 블랙커피’ 말이다.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p. 416 그날도 그는 역 구내매점에서 커피를 샀다. 여름철 도쿄 특유의 무더운 밤으로 등에 땀이 흥건히 고였지만, 그래도 그는 차가운 것 보다는 김이 오르는 뜨거운 블랙커피를 좋아했다. 쓰쿠루는 아무리 더워도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또 대학시절 친하게 지낸 하이다와도 자주 커피를 내려 마셨다. |
하루키와 자동차 (car)
** 이 글은 하루키의 소설과 수필 몇 권을 읽고,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뽑아 구성한 것입니다.
![]() (저는 비교적 최근에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에 빠져든 평범한 독자입니다. 최근에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하루키의 모든 작품을 읽진 못했습니다. 또 평범한 독자이기 때문에 문학적으로 작품을 평가할만한 역량은 되지 않습니다. 또 빠져들었기 때문에 다분히 하루키와 그의 작품에 우호적입니다.
스포일러가 싫으신 독자 분들은 해당 글을 읽지 않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몇 개 문장을 발췌했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데 방해가 되실 수 있습니다. 또 기억력이 많이 좋은 편은 아닙니다. 혹여나 제가 잘 못 기억하고 있거나, 제멋대로 해석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 자동차 사진출처: 폭스바겐 코리아 홈페이지 뉴골프
하루키의 수필 <이윽고 슬픈 외국어>를 읽다보면, 자동차에 대한 하루키의 생각를 정리한 에세이가 하나 있다. 본인 말로는 기술적인 것은 잘 모르니, 감각적인 설명밖에 할 수 없다고 하지만, 읽어보면 꽤 수긍이 갈 만한, 또 '아 왠지 그럴 것 같아!' 싶은 표현과 설명들이 많다.
p.143 (하루키가 구입한 폭스바겐 차) 유럽에서 타야 기분 좋을 차다... 고속도로에서 쌩쌩 달려보면 스티어링과 브레이크의 우수성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솔직히 말해 미국에서 타면 그다지 메리트가 없다. 하루키는 미국에서 폭스바겐 차를 차서 직접 타고 다니며, '유럽에서 타기 좋은 차'라는 나름의 평가를 내리는데... 그래서 <색채가 없는...>의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가 북유럽을 방문 했을 때 폭스바겐을 렌트하여 태운 것는 아닌지?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p. 313 “차를 예약해 두었어요. 아직 2000킬로미터밖에 달리지 않은 폭스바겐 골프에요… 다른 이야기이지만, 서두에 언급한 에세이집에 보면 하루키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본인이 소설가가 되었을 때,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떠났다고.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소설을 쓸까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라나? 하지만 하루키가 그렇게 글을 쓰진 않는다는 것을 알고 다시 돌아왔다는 이야기. 그런데 <색채가 없는...>에 보면 폭스바겐을 빌려 핀란드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본인이 직접 몰아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문장 아닌가? 주변인들이 걱정할 법도 한 듯.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p.20 쥐의 검은색 피아트 600에 함께 타게 되었는 지 전혀 기억 나지 않는다… 내가 충격에서 깨어나 부서진 문짝을 발로 걷어차고 밖으로 나오자, 피아트의 보닛 커버는 10미터가량 앞쪽의… 주인공은 ‘쥐’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와 만취한 채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다.부상은 없다. 이 장면이 전체 스토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기억이 나질 않고, 필요했나? 싶다. 사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작품은 첫 작품이어서 그런지 ‘으잉?’ 싶은 장면이 꽤 많다. 물론 전문가들이 읽으면 다 의미가 있는 장면이겠지만, 나같이 평범한 독자에게는 직관적으로 다가 오지 않는데,이 사고 장면 역시 젊은 날의 ‘객기’를 표현한 것인가? 정도가 나의 소견이다. |
하루키와 음악 (music)
** 이 글은 하루키의 소설과 수필 몇 권을 읽고,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뽑아 구성한 것입니다. (저는 비교적 최근에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에 빠져든 평범한 독자입니다. 최근에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하루키의 모든 작품을 읽진 못했습니다. 또 평범한 독자이기 때문에 문학적으로 작품을 평가할만한 역량은 되지 않습니다. 또 빠져들었기 때문에 다분히 하루키와 그의 작품에 우호적입니다. 스포일러가 싫으신 독자 분들은 해당 글을 읽지 않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몇 개 문장을 발췌했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데 방해가 되실 수 있습니다. 또 기억력이 많이 좋은 편은 아닙니다. 혹여나 제가 잘 못 기억하고 있거나, 제멋대로 해석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루키가 음악을 사랑하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소설가로 데뷔 하기 전 재즈바를 운영했었다. 그의 첫 등단 작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역시 재즈바를 운영하면서 쓴 단편이다. 소설가가 되고 나서는 재즈바를 닫았지만, 그의 작품에는 늘 음악이 흐른다.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p. 78-79 “프란츠 리스트의 ‘르 말 뒤 페이’예요. ‘순례의 해’라는 소곡집의 제1년, 스위스에 들어 있죠.”… “내가 아는 여자애가 자주 그 곡을 쳤거든.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였는데.” p. “넌 리스트의 ‘순례의 해’를 기억해?유즈가 자주 치던 곡이었는데.” 이 소설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된 곡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함께 지내던 4명의 친구들을 잃고,그 중에서 한 명의 친구(유즈)를 자살로 잃은 쓰쿠루가 유즈가 어떻게 죽었는지,또 자신은 왜 그 모임에서 퇴출되어야 했는 지 이유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소설. 쓰쿠루는 친구들 한 명 한 명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마지막에 이 곡을 기억하는 지 묻는다. 기억을 못하는 친구도 있고, 가끔 이 곡을 듣는 친구도 있다. 하지만 주인공만큼 이 곡에 대해 집착(?)을 가진 인물은 없다. 짙은 그리움이 담긴 곡이다. ![]() <태엽감는 새> (1권) p. 7 로시니의<도둑까치> 서곡을 휘파람으로 불고 있었다. 그것은 스파게티를 삶는 데 안성맞춤인 음악이었다. <도둑까치> 서곡이 몇 분이길래 스파게티 삶는 시간이라고 하지? 찾아 보니 10분 정도이다. 스파게티도 보통 10분 삶는다. 소설 첫 부분부터 주인공 오카다는 한 여성으로부터 끈질지게 전화를 받는데, 여성은 ‘10분의 시간을 달라’ 요구한다. 10분, 10분, 10분... 이 부분을 읽으면서, '십 분'이라는 것에 크게 의미를 두지 못했는데, 음악을 찾아보고, 또 스파게티에 대해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10분이라는 장치는 소설에서 꽤 중요한 시간의 길이였던 것이다. 음악을 들어보니, 뭔가... 10분 후면 완성될 김이 모락모락나는 스파게티가 기대되게 하는 곡이랄까? (이 부분에 대한 참고로...) 히라노요시노부作 <하루키 하루키>를 읽어보니, <태엽감는 새>의 첫 장은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라는 완전 다른 소설 탄생의 근원지라고 한다. p.106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의 주인공인 '하지메'는 원래 <태엽 감는 새 연대기>의 첫머리에 걸려 오는 정체불명의 전화는, 구체적으로 이즈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가 된다. p. 164 내가 문을 열었을 때에는 마침 <하와이언 웨딩 송>이 끝나고, <캐내디언 선셋>이 막 시작되었을 때였다. 주인공 오카다는 세탁소에 들릴 때마다 그 곳에서 나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별 것 아닌 소재 같지만 세탁소라는 장소의 설정은 소설의 스토리에서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 하고 있다. 그런데, 하루키와 같이 오카다씨도 굉장히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듯?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세탁소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의 제목을 단번에 알 수 있는가! ![]()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p. 19 시마모토 아버지의 레코드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곡은 리스트의 <피아노 콘체르토>였다. 소설은 주인공 남자와 3명의 여자가 관계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마모토라는 여자친구와 음악과는 소설 내용 중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p.321 내가 <스타 크로스드 러버스>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 멜로디를 들을 때마다 시마모토가 생각나기 때문이라는 것과 같은 이유는 아니었다. 그 곡은 이제 예전만큼 내 마음에 감동적으로 다가오지 않게 된 것이다. 주인공은 시마모토와의 사랑이 확실히 끝난 이후, 자신이 운영하는 바의 피아노연주자에게 이 곡을 더 이상 연주하지 말도록 한다. 글 속에는 쿨~하게 ‘시마모토가 생각나기 때문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그래도 옛 연인과의 스토리가 담인 곡이므로 들으면 슬프기 때문 아닐까?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p. 57 “신청곡은 비치 보이스의 <캘리포니아 걸스>, 옛 생각이 나게 하는 곡이지요. 어떠세요? 짐작이 가나요?” 주인공의 옛 사랑과 관계되어 있는 음반. 경쾌하고 신나는 곡이다. 주인공의 나이 19살, 당시 이 글을 집필했을 때 하루키의 나이 29살. 젊음이 담긴 곡의 생생함이 작품과 정말 잘 어울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