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여행기

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여행기

우리나라에서 세종, 정조, 연산군, 장희빈 등의 역사소재가 자주 사극에 등장하듯, 매년 일본 NHK에서 하는 대하사극에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3명이 살았던 시대, 혹은 메이지유신 전후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던 시기가 드라마소재로 인기가 좋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살았던 시대는 무로마치시대 후기에서 아즈치모모야마, 에도시대 개막으로 이어지는 약 60-70년 정도의 짧은 기간이지만, 치열했던 전쟁이야기가 기반이 되어 사랑, 전투, 충의, 우애 등을 소재로 한 많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특히 일본의 역사소설가 야마오카 소하치가 이들 3명의 생애를 담은 소설을 발표하면서 더욱 많은 에피소드가 가미되고, 만화, 영화, 드라마 등으로 제작되면서 어느 역사시대보다 널리 알려진 시기다. 한국에도 소설 <대망(도쿠가와 이에야스)>으로 번역되어 소개되었고, 만화로도 출판된 바 있어,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 몇 페이지를 읽고 떠났다.

 

세 명을 표현하는 가장 유명한 이야기로 두견새 이야기가 있는데, 세 사람의 성품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죽여버려라 - 오다 노부나가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울게 하라 - 도요토미 히데요시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려라 - 도쿠가와 이에야스

 

실제역사와 소설내용이 섞여, 허풍도 있고 현대에는 믿기 어려운 신화적 이야기도 많이 담겨 있지만, 다소 건조하고 따분할 수 있는 유적지들에 재미난 이야기가 씌워져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 그 곳들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7월 2일 간사이 공항 도착(10:45). 오사카에 들러 히데요시가 세운 오사카성을 보고 시작해야 마땅하지만, 일본 여행 때 마다 들렀던 곳이므로 이번 여행에서는 들르지 않았다.

 

오사카성은 '개천용의 허세가 묻어나는 성'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화려함만큼은 일본 전국의 어느 성에 비견할 수 없다. 너무 화려해서 쓸쓸함 마저 느껴지는 성이다.

 

바로 시가현 오쓰시로 신칸센을 타고 이동한다. (간사이공항역에서 오쓰역까지, JR 関西空港線&東海道本線、12:16 ~ 13:45, 지정석 3,500엔)

노부나가,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았던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의 최대 거점지였던 비와호 주변 도시여행을 시작하는 관문, 오쓰항에서 비와호를 바라본다. 확 트인 풍경을 지긋이 바라보며, 이 바다와 같이 광활한 호수가 그들에게 ‘천하를 평정하겠다’는 포부를 갔게 했음을 짐작해 본다. 비와호는 비파모양으로 생겨 비와호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비와호는 오사카성 천수각까지 잠길 정도의 수심(평균 약 85m)으로, 세계에서 3번째로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합의가 된 것인지?)

미시간주와 우호협정관계을 맺어 미시간호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크루즈를 타고 비와호를 둘러보았다. (비와호크루즈, 15:30 ~ 16:30, 탑승료 2,200엔)

 

 

일본 최대 수력발전 풍차도 보이고, (물론 하도 멀리 보여서 일본에서 제일 큰지 작은지 구별도 불가지만) 비파 가운데를 상징하는 다리, 오오하시[琵琶湖大橋]도 보이고 전설이 전해지는 히에이산[比叡山]도 보인다.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죽여버려라! – 오다노부나가의 아즈치성터

 

다음날(7월 3일), 아즈치 모모야마의 시대명에서도 언급되는 오다 노부나가의 본거지, 아즈치[安土]를 향해 출발! (오쓰역에서 아즈치역까지, JR 東海道本線、9:28-10:03, 570엔)

아즈치에 도착하자 마자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아즈치성터. 노부나가가 그의 부하였던 아케치 미쓰히데의 반란으로 자결한 이 후 아즈치성은 모두 소각되었다. 현재 남은 것은 성벽 일부 정도.

비가 내려 미끄럽고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다 보니,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이 곳을 올랐을 지, 또 이 곳에 성을 세운 우두머리의 위력은 어느 정도 였을 지 상상해 보게 된다.

성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크나큰 아쉬움을 안고 천수각을 모형으로 보존 해둔 노부나가관과 아즈치성고고학박물관을 향해 걸어갔다.

걸어가기 전에 아즈치성지 매표소에 아주머니 한 분이 앉아 계셔서, 박물관까지 혹시 버스가 있는지, 택시 타는 곳이 있는지 물으니 여기 성곽 올라갔다 내려올 정도 체력이 있으면 차를 안타도 된다며 가는 길을 알려주신다.

가도가도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논두렁을 지나고, 건널목을 건너고, 머리위로 지나가는 기차를 신기해하며... 걷고 또 걸어...

 

어찌어찌 찾아간 노부나가관. 거대한 천수각과 내부 모습이 일부 복원되어있어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노부나가관 옆 식당에는 노부나가 이름이 붙은 메뉴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햄버그 스테이크에 사이드로 나오는 가치도키즙[かちどき汁]은 노부나가가 아즈치성을 세울 때 먹었다는 메뉴를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아즈치산의 검은콩 된장을 사용하여 만든 된장국이다. 그가 어떤 음식을 먹었을 지 궁금하기에, 나도 노부나가햄버그정식으로!

 

맛은 그냥 평범했다. 그런데 배를 채우고 보니....... 다시 역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다!!! 어쩌다보니 걸어서 박물관까진 왔는데 버스 한 대도 지나지 않고, 택시정류장도 없고 황당하기 그지없다.

 

식당아주머니에게 ‘역으로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 지’ 물었다. 친절한 아주머니는 택시를 불러줬다. 덕분에 안전하게 택시를 타게 되었다. 기다리는 동안 차도 내 주시고, 심지어 한류배우 같단 칭찬까지...^^

 

시골 인심 후한 것은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비슷하다.

택시 타니 운전수 아저씨는 오다 노부나가의 팬이다. 책에서 읽은 노부나가 이야기도 많이 해주고, 또 마을의 과거 모습도 말해준다.

노부나가가 없었다면 히데요시 이에야스의 시대도 없었을 것이라며 그의 현대적 생각을 당시 사람들이 읽지 못했을 거란 의견과 또 당시 화려했던 마을의 모습이 남아 있지 않아 아쉽다는 말도... 역시 역사적 도시에서 택시를 몰려면 역사지식은 기본인 가 보다!

역에 도착하여 아즈치성자료관에도 살짝 들러 성을 1/20크기로 복원한 것도 구경하고, 손님이 나뿐인데도, 친절하게 아즈치성 비디오를 틀어주셔서 (미안해서) 비디오를 보며 설명도 듣고,

 

기차시간이 남아 역 앞 아즈치관광안내소에 들어가 아즈치 출신 어르신들과 이야기도 나눴다. 안내소 아주머니와 나와 같이 기차시간이 남아 들르신 할아버지도 역시 노부나가 이야기.

역사적으로 우수한 도시임에도 박물관까지 버스 한대도 없고, 역은 너무 지방 스럽지 않냐며 젊은이의 의견을 물어보신다.

오다 노부나가에 관심이 있어 찾아왔고, 많은 공부가 되었다고 하니 귀여운 노부나가 뱃지와 핸드폰걸이까지 선물로 주신다. 파는 물건이니 어디 가서 절대 소문내지 말아달라는 말과 함께..^^ (다들 와서 달라고 할까봐 걱정이라고 하시니, 가셔도 달라고 하지 마시길...)  

이 도시... 사람은 커녕 개미 한 마리도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았던 고요한 첫 인상에 아무도 못 만날 줄 알았는데. 이 분들을 만나 감사한 마음으로 떠난다! 나의 외갓집 파주 시골 할머니와 이모들과 같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떠나는 나를 배웅이라도 하듯 도시 사람들 모두가 자랑으로 삼는 오다 노부나가의 늠름한 모습의 동상이!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울게 하라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나가하마성

다음으로 비와호 북동쪽 나가하마시에 있는 히데요시가 처음으로 얻은 성, 나가하마성으로 향한다.(아즈치역에서 나가하마역까지, JR 東海道本線, 14:20-15:12, 570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매우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이 곳 성주가 되기 까지 안 해본 직업이 없을 정도로 많은 경험을 했다. 오다 노부나가의 말에게 먹이를 주는 직책에서 시작하여 첫 자신의 성을 갖게 되었을 때 기쁨은 어떠하였을까 상상해보았다.

지대도 그리 높지 않고 비와호와 가까워 적에게 쉽게 함락되지 않았을 까 싶을 정도의 성인데 시원한 호수바람이 기분을 좋게 만든다.

 

역 앞에는 히데요시와 이시다 미쓰나리의 동상이 하나 있다. 이시다 미쓰나리는 어린 승려였는데, 당시 나가하마성의 성주였던 히데요시를 만나 차를 대접하게 된다. 매사냥을 마치고 갈증이 났던 히데요시에게 첫 잔은 미지근한 차를 큰 찻잔에 가득 담아 내오고, 다음 잔은 조금 따뜻하게 하여 반 정도 차를 담아 내오고, 마지막 잔은 작은 찻잔에 뜨거운 차를 대접하였다. 히데요시는 그의 재치와 마음씀씀이에 감탄하여 그를 부하로 삼게 된다. (근데 왜 에피소드에 감탄하지? 이렇게 마시면 목이 덜 마른가?)

나가하마역 앞에 있는 동상은 히데요시와 이시다 미쓰나리의 만남을 상징하는 동상이다. 왼쪽이 히데요시 오른쪽이 이시다. 늘 궁금해왔는데, 일본 사람들은 3명 중 히데요시에게 박하다. 출신이 별로여서 인지, 약삭빠름이 싫은 지 초상화만 보아도 유독 왜소하고 기품 없이 묘사되어 있다. 물론 한국사람들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므로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히데요시 얼굴에 대한 의문을 품은 채 다음 도시로 떠난다. 

나가하마에서 나고야로 이동하여 하루 숙박했다. (나가하마역에서 나고야역까지, JR 北陸本線&東海道新幹線、18:00-18:59, 3,640엔) 나고야에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자신의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증축한 성, 나고야성이 있다. 가까운 시기에 방문한 적이 있어 이번 여정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다음 날(7월 4일) 아침 나고야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악기, 장어로 유명한 하마마쓰시로 이동했다. (나고야역에서 하마마쓰역까지, JR 東海道新幹線,09:35-10:06, 4,810엔)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려라 -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하마마쓰성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인질생활로 보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오카자키성 성주를 거쳐 1568년 함락하여 성주가 된 하마마쓰성. 여행 전에 몇 장 읽은 <대망>에도 하마마쓰성이 자주 언급된다.

하마마쓰 성의 소나무는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잘 흔들렸다. 하마나 호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었다. - <대망> 3권 p.85

책에 묘사된 바와 같이 소나무들이 울창했고, (이미 도시가 되어버려서 과연 호수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하마마쓰성은 성주들이 에도막부 요직에 많이 임명되어 ‘출세의 성’으로 유명하다. 공사중이어서 많은 부분을 살펴 볼 순 없었지만. 출세의 성으로 유명하다는 이곳에서 일본 어린 꿈나무들이 조를 이루어 견학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니, 꽤나 귀여웠다.

 

여행기 테마에 따라 3인의 동상을 모두 견학하고자 했으나, 하마마쓰성 주변에 있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동상을 못 보고 지나가 버렸다. 아쉬우나마 하마마쓰역 바로 앞에 있는 귀여운 이에야스 잔디인형으로 대체한다!

 

 

하마마쓰에서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가는 길(하마마쓰역에서 신바시역까지, JR 東海道新幹線 10:11~11:43, 8,070엔)에 시즈오카시를 거쳐가는데, 시즈오카시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인질로 잡혀 어린 시절을 보낸 슨푸성이 있다.

지금은 시즈오카현청소재지로 이용되고 있는데, 지난 여행에서 한 차례 가본 바가 있어 이번 여행에서는 굳이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성 자체가 현대적 공원과 접목되어 있어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으니 참고하시길.

축성 시기는 1585년으로 짐작되며, 이에야스가 이마가와 가문의 저택이 있던 장소에 성을 쌓았다. 그 후 1607년 은거하던 이에야스가 성을 개축했다.

마지막으로 도쿄에는 기나긴 기다림 끝에 쇼군 자리에 올라 에도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성이 있다. ‘도쿄에 성이 있다고?’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바로 현재 천황이 살고 있는 고쿄[皇居, 황거]다. 해자 등 여전히 성의 모습이 남아 있다.

이번 여행... 마치 3명의 무사들의 호위를 받는 듯 든든함이 느껴졌다. 조금 더 공부하고 올 걸…아쉬움도 남고, 또 좀 더 둘러보지 못하였음에 서운함도 남는다.

다음 여행은 일본에서 사랑받는(? 자랑하는?) 또 다른 시기 메이지유신이 전후기 유신삼걸의 이야기로 여행을 떠나볼 까 한다. 사쓰마, 조슈, 교토 등지에서 만나볼 수 있는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 기도 다카요시의 발자취를 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