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이며 (김훈 作)

때로는 효율적이지 못한 일들을 감행할 때가 있다.

지난 주말 6시간을 달려 가서 물곰국 한 그릇을 먹고,

다시 6시간을 달려 돌아왔다.

책 속 그맛, 

물곰국

삐뚠 마음을 가진 나는 ‘1000만 관객 달성’, ‘베스트셀러’, ‘요즘 핫이슈’란 타이틀의 작품을 멀리하다가, 

한참 뒤에나 접하고 뒷북의 감동을 둥둥 두드리곤 한다.

그러나 요즘 이례적으로 김훈 작가의 ‘라면을 끓이며’를 재미있게 읽고 있다. 몇 번이나 김훈의 책을 통해 우리 나라의 좋은 곳을 만난 덕분이다.

책은 이미 발간된 《밥벌이의 지겨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바다의 기별》 등에서 좋은 산문을 가려내고, 새로 쓴 원고를 덧붙여 완성되었다고 한다.

밥 / 돈 / 몸 / 길 / 글  총 5부작으로 엮여 있는데,

그 중 1부가 밥이고, ‘라면을 끓이며’가 첫 산문이다.

첫 글부터 배고픔을 참을 수 없기 시작. 

돈, 몸에 담긴 산문들에 고달픔을 느끼다, 

마지막 글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엔 왠지 모를 서글픔이 녹아 있다.

어째 됐든 난 ‘라면을 끓이며’에서부터 식욕을 억누르지 못하고 물을 끓였다.

김훈 작가는 단무지와 시금치, 우엉 한 줄만 넣은, 혹은 절인 무와 실파 등 야채만 든 김밥이 좋다고 이야기 한다.

파는 라면 국물에 천연의 단맛과 청량감을 불어넣어주고, 그 맛을 면에 스미게 한다. 파가 우러난 국물은 달고도 쌉쌀하다. 파는 라면의 공업적 질감을 순화시킨다. 그 다음에는 달걀을 넣는다. 달걀은 미리 깨서 흰자와노른자를 섞어놓아야 한다.

- P.30 ‘라면을 끓이며’ (김훈 作 | 문학동네)

어릴 땐 부모님이 집을 비우면 동생과 물을 적게 넣고 라면볶이처럼 만들어 먹기도 하고 고추장을 풀기도 하고 여러 시도를 했는데...

요즘엔 김훈 작가의 레시피처럼 파와 계란 만으로 깔끔한 맛을 낸 라면을 찾게 된다. 

라면을 먹으며 책을 읽다 보니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작가가 8개월간 경북 울진군 죽변면 바닷가에 머물며 맛본 바다의 맛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의 걷기 코스는 연구소 → 후정해수욕장 → 111반점 → 죽변항 → 수산물 위판장 → 카페 피렌체 → 대나무숲길 → 드라마세트장 → 죽변등대였고, 돌아올 때는 이 코스를 거꾸로 걸었다.

-  P.51-52 ‘라면을 끓이며’ (김훈 作 | 문학동네) 中

죽변항이 있는 죽변이란 지명은 대나무숲 끝에 위치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오징어, 고등어, 꽁치, 대게, 도루묵, 가자미 등이 많이 잡히는어항이다.

책을 통해 죽변항의 활기를 기대하고 갔지만, 출발이 늦었고 울진은 너무 멀었다.

오로지 등대의 불빛과 희미한 가로등만이 반짝이는 칠흑 같은 어둠 속 바다와 항구 풍경에 벌벌 떨다 돌아왔다.

몇 시간만 지나도 감쪽같이 푸른 바다에 활기가 더해질 줄 알면서도, 검은 바다는 무섭다.

죽변항의 돌섬식당엘 들어갔다.

‘문어볶음’이 유명하다고 하여 들어갔는데, 솔직히 문어볶음은 다시 가도 주문하지 않을 듯 하다.

물곰국의 맛이 참 좋았다. 

몰캉몰캉 푸딩 같은 흰 살.

콩나물과 김치가 들어가 시원하다.

물곰국은 인간의 창자뿐 아니라 마음을 위로한다. 그 국물은, 세상잡사를 밀쳐버리고 우선 이 국물에 몸을 맡기라고 말한다. 몸을 맡기고 나면 마음은 저절로 몸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위안의 기능을 갖는다는 점에서, 물곰국은 하나의 완연한 세계를 갖는다. 이런 국물은 이 지구상에 울진 말고는 없다.

-    P.57 ‘라면을 끓이며’ (김훈 作 | 문학동네) 中

물곰은 꼼치과의 어류로 ‘물메기’라는 생선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생김새가 좋지 않기도 하고… 먹지 않고 버렸다고 하는데 (이 맛있는 것을 왜?) 지역에 따라 곰치(실제 이 이름을 가진 다른 물고기도 있다!), 물텀벙, 미거지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생김새를 찾아 보니, 몸매도 흐물흐물, 눈빛도 흐리멍텅한 것이 맛과 꼭 닮았다.

겉과 속이 똑 닮아 더욱 마음에 든다.

작가가 묘사한 맛이 고스란히 혀로 전해지자, 

같은 풍경을 눈에 담지 못한 점이 아쉬워 진다.

다음엔 꼭 아침 일찍 울진에 가볼 예정이다.

동일한 책에 담긴 '11월'이란 산문을 읽으며 같은 시간을 떠나 보내고 있단 점에 아쉬움을 덜어내기로 한다.

그 사소하게 바스락거리던 것들은 다들 어디로 가는가. 11월에는 이런 하찮고 가벼운 것들의 무거움에 마음을 다치기 십상이다.

- p.371 ‘라면을 끓이며’ (김훈 作 | 문학동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