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史호선 (강응천 作)

p.183 한 나라의 임금에서 '노산군'이라는 일개 왕족으로 강등된 단종은 자신을 호송해 온 금부도사 왕방연과 함께 영월의 청령포로 향했다...

p.184 청령포는 삼면이 서강으로 둘러싸이고 남쪽으로는 육륙봉이라는 험준한 절벽으로 막혀있어, 배를 타지 않고는 오갈 수 없는 천연의 감옥이다...관음송을 지나 가파른 언덕을 5분 정도 오르면 천길 낭떠러지인 노산대에 이른다... 

청령포와 관음송, 노산대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방절리 242-4

3년전? 2010년 정도 가을에 다녀온 단종 유배지, 청령포. 

오래된 기억이라 많은 것이 생각나진 않지만, 정말 쓸쓸했던 기억이 오래 남는다. 청령포로 들어가기 위해서 나룻배 하나를 타고 들어갔는데, (지금은 수량이 조금 적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수영으로 나올 수도 있을 법한데...'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청령포를 탈출할 수 있건 없건. 정말 혼자서 이곳에서 살아가기엔 너무나 쓸쓸했을 것 같다. 사진에도 잘 담겨 있는데, 노산대에 올라 바라본 풍경이 가을햇살을 받아 더욱 고독함을 품고 있다.

p.188 엄흥도는 아무도 거두지 않는 단종의 시신을 관까지 준비해 장례를 치르고는 자신의 선산에 묻고 평생 숨어 살았다. 영조는 엄흥도의 충심을 기려 단종의 무덤이 있는 장릉에 충절비를 세워주었다... 

- 장릉(莊陵)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1087

 방문했을 당시에는 의미를 잘 모르다가 나중에서야 책을 읽거나,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는 관심이 생겨 '아! 그러고 보니 갔었네!' 생각이 문득 드는 곳이 있다. 나에게는 조선왕릉들이 그렇다. 어릴 때부터, 또 성인이 된 이후에도 몇 명의 왕릉을 갔었고, 심지어 집 주변에도 유명한 왕릉이 몇 기가 있는데... 정작 갔을 때는 공부도 안하고, 그냥 산책겸 다녀와서 큰 감흥이 없었다. 

장릉도 이제 와서야 책도 보고, 또 단종의 서글픔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시기가 되니, 장소의 감흥이 나중에서야 찾아온다. 다시 돌아보니, '왕릉'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아담했던 곳이었다. 책에서도 소나무들이 능을 향해 있어 경이롭다고 쓰여 있는데, 정말로 소나무 경관이 보기 좋았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때 이광수 소설에 빠져, <흙>, <무정>, <유정>, <사랑> 등을 줄줄이 읽었던 적이 있는데. 주말에 <단종애사>를 한 번 읽어봐야 겠다.

 p.128 교보문고 앞에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해 세운 비각이 보인다. 비각 안에는 '이정원표'라는 표석이 있다. 바로 이곳이 조선 시대 길의 원점이었다...

 - 기념비전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42-3 ‎

일주일에도 5차례 출퇴근길에 항상 마주하는 풍경인데,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그냥 지나쳤던 풍경들...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의미도 알고, 생각해보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광화문 조선일보 건물 앞에는 도로원표가 있는데, 서울의 중심에서 각 지역까지의 거리를 표시해둔 비석이다. 전에 근처에서 근무할 때 자주 지나치며 '아 대전까지 몇 키로구나...'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바로 대각선 길건너에도 이정원표가 있구나. 원래는 태평로 가운데 지점이 서울의 중심, 한국의 중심이자 원점이라고 하는데, 교통에 불편하여 조금 비스듬히 비켜 세워두었다고 한다. 양쪽에 있는 두 개 다 정확한 중심은 아닌 듯하다. 

어디가 정확한 중심이든,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않고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나의 중심을 찾아가는 듯하여 기쁘다.

 

  

p.67 조선 시대에는 이 부근에 '태평관'이라는 국립호텔이 있었다.  지금도 남대문 사거리와 광화문 사거리를 잇는 도로를 '태평로'라 부르는데, 이 명칭은 여기서 유래했다. 태평관은 우리나라를 찾은 중국 명나라 사신이 머물던 장소다... 

태평로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

근처에서 근무할 때, 회사 사람들이 회사의 위치를 설명할 때, '태평로1가'라는 단어를 자부심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 경우를 종종봤다. 누구나 잘 아는, 흔히 쓰는 지명은 아닌 것 같은데, (오히려 광화문 4번출구요, 광화문 앞 광장 옆이요 등등이 더 알기 쉽지 않나?) 굳이 '태평로'를 힘주어 발음했는가. 이 책을 통하여 답을 조금 알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명나라 사신들의 여관이 있었고, 관아와 교육기관이 있었다. 또 한말에는 외교관들이 머무르는 호텔과 공관이 세워졌고, 현재도 언론사와 공공기관이 몰려 있다. 과히 서울의 중심으로서 자랑으로 삼을 만 하다. 헌데 길의 이름이 중국과 연관있다니, 조금 의외이면서도 흥미롭다.

 

ⓒ public domain (출처:労働経済社「映像が語る日韓併合史」)

P.24 동대문인 흥인지문에 이르고, 서쪽으로 가면 서대문인 돈의문에 닿는다. 북쪽으로는 북대문인 숙정문이 있고, 남쪽으로는 남대문인 숭례문이 있다. 한마디로 사통팔달한 도성의 중심지다. 

- 숙정문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산2-1

동대문이나 서대문, 숭례문 모두 쉽게 지나가고 자주 볼 수 있는데, 숙정문은 '어디 있지?' 싶은 문이다. 성곽길을 돌면서 만났다. 

 

P.63 이대역에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시청역에서 내린 뒤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보자. 곧 근대 교육의 산실은 정동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 기관인 '배재학당'도... 그뿐 아니라 이화학당 역시 기와집에 30명 남짓한 학생을 모아 정동에서 열었다. 

-  정동길 (배재학당, 이화여고 등)

서울시 중구 정동길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보자!' 저자의 말을 이렇게 잘 듣는 독자가 있다니. 책을 읽자마자 정동길을 걷고 싶었다. 회사일이 바빠 가까이 있음에도 몇 주째 못 가보다가... 드디어! 가을 하늘 맑은 날 기회가 생겨, 돌아보았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책을 읽고 걸어보니, 사뭇 남다르다. (심지어 주변에서 일한 적이 있음에도) 평소에 쉽게 지나치고 관심갖지 않았던 대상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고 새롭게 보인다. 하얀 구러시아공사관은 아관파천의 슬픈 역사를 담고 있고, 이화학당, 배재학당은 우리 근대교육의 발원지다. 나라를 잃게 된 조약, 을사늑약에 서명을 한 중명전도 정동길에 있다.

길을 걸어보면 어느샌가 여느 유럽의 도시가 부럽지 않을, 아름다운 건축물과 길을 마주하게 된다. 그 속에 우리 근대역사 서글픔과, 또 생동하는 근대교육의 숨소리가 담겨 있다.

 러시아공사관. 명성왕후 시해 이후 고종과 세자가 이곳으로 피신하여 지냈다. 625전쟁 때 불타 없어진 후 현재의 건물은 1973년에 복원한 건물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