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zuoka

“후지산이 부끄러워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일본에는 정월 초하루에 꾸는 꿈에 ‘一富士, 二鷹, 三茄子(첫 번째 후지산, 두 번째 매, 세 번째는 가지)’가 나오면 한해의 재수가 좋다는 말이 있다. 여러 說(설)이 있지만, 이 세 가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3~1616)가 시즈오카(靜岡)를 좋아했던 세 가지 이유라는 이야기가 있다.

 시즈오카현에는 후지산이 있고, 山勢(산세)가 빼어나 매사냥에 좋으며, 가지가 맛있는 곳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유소년시절, 전국시대 다이묘(영주)로 있었던 시기, 천하통일 후의 생애를 시즈오카에서 보냈다. 그는 시즈오카현에서 生(생)을 마감하면서 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에 있는 구노산(久能山)에 자신의 유골을 매장할 것을 遺言(유언)으로 남겼다.

 시즈오카현은 일본 혼슈(本州) 중부에 있는 현으로 도쿄(東京)와 나고야(名古屋)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인구는 약 380만명. 높이 3776m의 후지산과 스루가만(駿河灣), 이즈반도(伊豆半島)를 끼고 있다. 산지가 많아 차, 딸기, 밀감, 와사비 등 농업이 성할 뿐 아니라, 바다를 끼고 있어 벚꽃새우, 다랑어, 가다랑어 등 수산업도 발달해 있다.

 6월 4일 개항한 시즈오카공항에 도착하자 시즈오카현 관광국 직원들이 여행객들을 맞고 있었다. 녹찻잎을 딸 때 입는다는 기모노를 입고 시즈오카産(산) 생수와 에코백을 나눠주고 있었다. 한국 여행객들이 呼客(호객)행위인 줄 알고 어리둥절해 하자, 여직원 한 명이 “송무리에요(선물이에요)”라며 선물을 건넸다. 

 일본 정부가 지방공항 신설 동결방침을 밝힌 상태여서 ‘최후의 지방공항’으로 불리는 시즈오카공항의 애칭은 후지산시즈오카공항. 시즈오카 관광진흥실장 가토 히로아키(加藤博昭) 씨는 “시즈오카현에 후지산이 있다는 것을 관광객들에게 알려 드리고 싶어서 꼭 ‘후지산’을 붙여 말한다”고 했다.

 공항 3층 전망대는 후지산이 정면에 보일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다. 공항이 세워지는 자리에 살고 있던 귀중한 동식물들은 모두 다른 지역으로 移殖(이식)시켰고, 연못을 정비해 산책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공항을 나와 이동하는 내내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綠色(녹색)’뿐이었다. 차밭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고, 차밭이 끝나면 나무들로 빽빽한 숲이었다. 오르막길에 오르는 듯싶으면 어느덧 산속에 들어가 있었다. 

  

  

모든 음식은 녹차로 통한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1997년 ‘세계에서 가장 긴 목조 步道橋(보도교)’로 기네스북에 오른 897.4m의 ‘호우라이바시(蓬萊橋)’였다. 이 목조다리는 1879년 주변에 살고 있던 농민들이 오이가와(大井川)라는 큰 강 건너편에 차밭을 만들고, 건너다니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비가 내려 촉촉이 젖은 다리의 짙은 나무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점심식사는 이시다차야(石疊茶屋)라는 곳에서 메밀국수를 먹었다. ‘차야(茶屋)’라는 이름에 걸맞게 음식에 녹차를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국수는 찻잎을 넣어 만들어 녹색이었고, 찻잎튀김, 그리고 튀김을 찍어 먹는 소금도 녹차가루와 함께 간 녹차소금이었다. 

  

  시즈오카에서 유명한 ‘봉와사비’는 죽순처럼 생긴 生(생)와사비를 판에 직접 갈아서 메밀국수 소스에 넣어 먹는다. 주인 할머니가 기모노 차림으로 “실례하겠습니다. 맛있게 드세요”라고 하며 고개를 깊이 숙여 절하는 모습을 보자, 일본에 와 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찾아간 곳은 ‘오차노사토(녹차박물관)’였다. 일본의 茶(차) 역사, 차 문화, 그리고 세계 각지의 차 종류가 전시되어 있고, 직접 찻잎을 따보는 체험을 해볼 수도 있었다. 

  

  

고보리엔슈(小堀遠州)는 일본 에도시대 초기의 영주로 茶道(다도)의 大家(대가)다. 그는 ‘도쿠가와’ 一族(일족)의 다도 스승으로 활약했었다. 오차노사토에는 고보리엔슈가 세운 건물과 정원을 복원한 쇼모쿠로 다실과 정원이 있다. 

  

  

다실 창밖으로는 후지산이 보이고, 테라스에 앉아 있으면 연못물이 밑으로 흘러간다. 다실에서 일본 전통 다도를 배웠다. 기모노를 입고 앉아, 맛이 쓴 차를 마시기 전에 달콤한 양갱을 먹었다. 

  

   시즈오카현의 차밭 면적은 약 1억9900만m²에 달한다. 생산량은 4만t으로 일본 전국 녹차 생산량의 약 43%를 차지하고 있다. 시즈오카의 차는 1241년 名僧(명승) 쇼이치고쿠시(聖一國師)가 중국 宋(송)나라에서 종자를 가져다 심은 것이 그 유래다. 시즈오카는 산이 깊고 경사져 있으며 큰 강이 흐르는 지형이다. 배수가 좋고 기온차가 큰 자연환경은 최상급 차를 만들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쇼모쿠로 다실에서 일행에게 다도를 가르친 할머니는 “시즈오카 차는 떫은맛이 없고 부드러우며 향이 진하지만 비리지 않다”고 말했다. 일행 중 한 명이 “계속 녹색음식을 먹어 한국으로 돌아갈 때쯤에는 우리 모두 ‘슈렉’이 돼 있을 것”이라며 농담을 했다.

  

  

   미남·미녀 증명서

  

마을사람들 한 명당 돌 하나씩을 길에 박아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했다는 이시다타미길.

  둘째 날에는 후지산을 관광할 예정이어서 후지산 가까이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시즈오카현 후지시에 있는 후지카와라쿠자(富士川樂座)는 시즈오카縣道(현도)와 야마나시 현도가 만나는 지점에 세워진 휴게시설로 각종 오락시설과 전망대가 있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후지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저녁식사 메뉴는 ‘초밥’이었다. 최근 일본에서 피부미용을 위해 여성들이 즐겨 먹는다는 ‘콜라겐’스시가 눈에 띄었다. 밥 위에 투명한 젤리처럼 콜라겐이 올라가 있고 매실장아찌가 그 위에 올려져 있었다. 시즈오카현산업부 관광국 관광진흥실의 미즈모리 요시히사(水守喜久)씨는 “시즈오카는 바다가 가까워 신선한 회로 만든 초밥을 먹을 수 있다”며 “특히 벚꽃새우는 시즈오카현 스루가만에서만 잡히는 귀한 새우”라고 말했다.

  

 

 이튿날에도 빗줄기는 약해졌지만 여전히 이슬비가 내렸다. TV에서 재미있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6월 6일부터 신후지산역 관광안내소에서 날씨가 흐린 날에 ‘후지산을 볼 수 없었음’을 증명하는 ‘미남증명서(男前證明書)’와 ‘미인증명서(べっびん證明書)’를 발행한다는 소식이었다. 후지산을 보기 위해 멀리서 찾아왔지만 보지 못한 채 아쉽게 떠나는 관광객들을 달래고자 시에서 생각해낸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남자 관광객에게 발행하는 미남증명서에는 “일본 최고의 미녀 후지산이 당신 앞에 얼굴을 드러내기 부끄러워 그 모습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미인증명서에는 “일본 최고의 미녀 후지산이 당신의 미모를 질투해 그 모습을 감추고 말았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차로 갈 수 있는 후지산 最高(최고)지점인 후지산 신고고메(富士山新五合目)로 오르는 길에는 쭉쭉 뻗은 짙은 고동색의 삼나무가 빽빽하게 서 있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산소가 부족하고, 땅이 척박해 나무들의 키는 작아지고, 휘어져 자라고 있었다. 신고고메 2400m 지점에 도착하자 대부분의 나무는 사람 허리 정도까지 오는 크기였고, 흙은 용암덩어리와 섞여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멀리 눈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구름은 발밑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신고고메부터는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내려가는 길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壯觀(장관)이었다. 스루가만의 파란 바다가 보였다. 짙은 녹색의 산줄기는 이즈반도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흰 연기를 뿜어내는 공장이 있고,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縣(현) 전체 모습은 장난감마을 같았다. 갈색털을 가진 커다란 사슴이 숲에서 튀어나와 떠나는 일행을 배웅해 주었다.

  

  

  “후지산이 보여요”

  

  일행은 니혼다이라(日本平)역에서 내려 구노산(九能山)역행 로프웨이(리프트의 일종)를 탔다. 구노산의 峽谷(협곡) 위를 지나가는 로프웨이는 1065m로 구노산역까지 5분 정도 소요됐다. 깊게 파인 협곡을 내려다보니 아찔했다. 

  

  구노산역에 있는 구노산도쇼구(九能山東照宮)는 도쿠가와의 셋째 아들이자 에도 막부의 2대 장군 도쿠가와 히데타다(德川秀忠)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몸과 영혼을 모시고자 세운 神殿(신전)이다. 신전의 가장 안쪽에는 神體(신체)라 하여 神社(신사)에 모시는 예배의 대상물이 있는데, 신전안내를 해준 望月伸夫(모치즈키노부노) 씨는 “신체가 무엇인지 알려고 해서도 안되고, 알고 있는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火災(화재)가 나서 어쩔 수 없이 열어야 하는 상황이 아닌 이상, 절대 열어봐서는 안된다고 했다. 필자는 그것이 너무 궁금해 혹시 예상하고 있는 물건이 있는지 물었다. 

  

  “다른 신사의 경우에는 생전에 사용했던 칼이 나오기도 했었고…. 매우 중요한 유품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짐작만 하고 있습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호텔에서 멀지 않은 시즈오카縣廳(현청) 주변 공원을 산책했다. 새하얀 고양이 세 마리가 있어 가까이 다가갔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도둑고양이 같지 않고 깨끗하고 영양상태가 좋아 보였다. 한 할머니가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 통조림을 뜯어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한 고양이의 꼬리가 매우 짧았다. 할머니는 “아이짱(고양이 이름)이 꼬리가 썩어 들어가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병원에 데려가 치료해 줬다”고 말했다. 

  

   “귀여워해 주는 것은 누구나 할 줄 알지…. 아픈 줄도 모르고….”

  

  고양이들을 몇 번이고 집으로 데려가 보살피려 했지만 금방 도망쳐 지금은 이렇게 할머니가 매일 저녁 공원으로 찾아와 밥을 주고 있다고 했다. 

  

  셋째 날 아침 미즈모리 씨가 기쁜 소식을 전해 왔다. 

  

  “오늘은 후지산이 보여요.”

  

  이틀 내내 계속된 흐린 날씨로 3박4일간 후지산을 한 번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었다. 일행은 일정을 바꾸어 후지산이 잘 보인다는 시미즈항(淸水港)으로 향했다. 항구에 도착하자 바다 위에 구름이 한가득 떠 있었고, 그 위로 솟아 있는 산이 보였다. 선명하게 보이진 않았지만 눈이 하얗게 쌓인 ‘후지산’이었다.

  

오렌지색 티셔츠, 알고 보니…

 

  그 모습은 실제라기보다 하늘에 합성을 해 놓은 것 같았다. 산 밑에 있는 자동차, 공장, 배, 그리고 다른 산들은 현실 속의 풍경이었는데, 후지산은 그 현실세계와 동떨어져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來生(내생)에서도 시즈오카에 머물고 싶어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시즈오카에서는 요즘 흔히 볼 수 없는 증기기관차를 타 볼 수 있다. 오이가와鐵道(철도) 39.5km 구간을 달리는 증기기관차는 192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1976년에 복원됐다. 미즈모리 씨는 “일본사람들은 증기기관차에 대한 鄕愁(향수)가 짙다”고 말했다. 

    

  

일행은 증기기관차를 타고 가와네(家山)역에서 센즈역까지 40분가량 이동했다. 이동하는 내내 창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노천탕이 있는 온천을 지날 때에는 20~30명의 아저씨들이 목욕을 하다 말고 벌거벗은 몸으로 기관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멀리서 보여 오렌지색 티셔츠를 입고 있는 줄 알았는데 모두 알몸이었다. 

  

  증기기관차는 창문을 활짝 열고 달려 시원한 산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터널로 들어서는 순간 탁한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내릴 때가 되니 필자의 얼굴은 군데군데 먼지가 껴 있었다. 몸 곳곳에 쌓인 먼지를 씻어내기 위해 가와네온천을 찾았다. 아토피에 좋다는 온천물은 온몸에 축적된 피로를 녹였다. 몸을 씻어낼 뿐 아니라, 산으로 둘러싸인 자연 속 노천탕에서 맑은 공기로 몸속에 쌓인 먼지까지 씻어냈다.

  

  마지막 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시즈오카공항에 도착하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비행장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공항이 생긴 것이 기뻐 공항을 보러 찾아온 近郊(근교) 주민들이었다. 3박4일 동안 만난 시즈오카 현민들은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면 “꼭 다시 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비행기에 탑승해 창밖을 바라봤다. 시즈오카 사람들은 비행기가 달리기 시작해 떠오를 때까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후지산 아래 끝없이 펼쳐진 녹차밭이 멀어져 갔다.⊙

시즈오카현(Shizuoka)의 그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