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th

영화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자베르의 숨결을 느끼다!

영국 바스 여행

 

'레미제라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자베르 경감이다.

특히 영화에서 러셀 크로우가 연기한 자베르 경감은 최고였다.

(많은 사람들이 2012년에 개봉한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러셀 크로우가 미스 캐스트라고들 하는데, 아직도 나는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왜 자베르를 좋아하는 가 물으면.

자베르 역시 장발장과 다를 바 없던 미천한(Miserable)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하며, 자신만의 견고한 신념에 의해 살아갔던 모습에 존경을 느꼈기 때문에.

자살로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던 감정을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지만, 허무한 죽음에 헛헛함을 느꼈기에.

좋아하는 데는 수 십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수려한 문장으로 제대로 담아 낼 수 없기에 아쉽다.

영화에서 러셀 크로우가 단독으로 노래한 두 장면.

자베르 경감이 별을 보며 장발장을 꼭 체포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신 (곡명 'star') 과,

평생을 적으로 살아왔던 장발장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게 되자, 결국 자살의 길을 택하게 되는 신 (곡명 'javert's suicide')은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감동적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이 부분을 책에서 찾아서 여러 번 다시 읽어보기도 하고, 음악을 무한반복 듣기도 하고, 유투브에서도 동영상을 수 차례 돌려보기도 했다.

이미 한 번 가 본 영국을 '다시 가야 할 까' 망설이던 상황을 종결시킨 것은, 런던 근교도시 '바스(bath)'가 큰 역할을 했다. 영화에서 자베르 경감의 자살 장면이 촬영된 다리가 바로 바스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바스는 런던 패딩턴에서 약 180km정도 떨어진 도시로, 기차로는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2000년 전에 만들어진 로마시대 유적으로 1987년에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특히 로마인들이 만든 온천이 유명한데, 18세기에 온천의 효능이 영국 상류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오랜 기간 휴양도시로 사랑 받아 왔다.

바스역에 내려서 인포메이션센터에서 지도를 사고, 로만 바스 박물관(Roman Bath Museum)쪽으로 걸어갔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저 멀리 희미하게 들려오던 음악이 가까워진다. 화창한 날씨와, 도시 전반의 분위기와, 그에 걸 맞는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순간. 굉장히 감동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핸드폰으로 비디오를 찍었다. 그 순간을 잊고 싶지 않았으므로.

로만 바스 박물관으로 보존되어 있는 로마인들의 온천은 굉장히 기묘한 색을 띄고 있었다. 얼마 전 큰 맘 먹고 구매한 132개 색이 있는 색연필을 떠올리며,'이 색을 표현해 낼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졌다.

 

INFORMATION

로만 바스 박물관(Roman Bath Museum)

개관시간: 1월 ~ 2월, 11월 ~ 12월 9:30 - 17:30 / 3월 ~ 6월, 9월 ~ 10월 9:00 - 18:00 / 7월 ~ 8월 9:00 - 22:00 (12월 25, 26일 휴무)

입장료: 성인 £13.50 (7,8월은 £14) / 어린이 £8.80

홈페이지: http://www.romanbaths.co.uk

관광객만 조금 적다면.

바스는 한번쯤 꼭 살아보고 싶은 도시였다.

곳곳에 숨겨진 흥미로운 장소가 많았다. 그 중 한 헌책방이 마음에 들어왔다. 골목길 모퉁이에 세워진 빨간 외관. 겉모습도 귀여운데 안에 들어가면 더욱 귀엽고 친절한 주인아저씨가 있었다.

그 외에도 건물의 색감을 참, 잘 쓰는 도시였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립주택으로 손꼽히는 로열 크레슨트(Royal Crescent)는 들어가보진 않고, 밖에서만 구경하였다. 30채의 집을 초승달 모양으로 연결한 건물인데, 180m나 된다고 한다. 건물의 외양도 인상 깊었지만, 그 앞에 펼쳐있던 광장, 그리고 그 앞 푸른 잔디에 아무 걱정이 없는 듯 앉아 광합성(?)을 하고 있던 사람들. 그 풍경이 무한정 부러웠다.

바스여행의 마지막은 가장 가보고 싶던 자베르 경감의 자살신을 촬영한 풀터니다리(Pulteney Bridge)로 향한다. 다리 위에 있는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에이번강 위에 놓인 풀터니다리는 1774년에 처음 세워졌지만, 여러 차례 보수공사를 거쳤다. 특히 자베르 경감이 떨어진 보는 홍수 방지를 위해 비교적 최근 (1968년과 1972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보수되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 굉장히 긴장감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는데, 실제 모습도 굉장히 유속이 빠른 듯 보였다. 실제로 소설에서는 자베르 경감이 자살하는 장소는 파리의 센강임에도 바스에서 촬영된 이유를 알 듯 했다.

▲ 영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평화로운 아이스크림 시간.

바스를 걷는 내내, (이번 여름여행에 꽤나 자주 등장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왜 인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 답답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짐도 푸르지 않고 찾아본 것이 바로 이 답답함의 열쇠였다.

열쇠는 하루키의 여행기를 묶은 에세이집 '먼 북 소리'에 있었다.

런던에 있는 동안에 딱 한 번 짧은 여행을 했다. 드디어 소설이 완성되었으므로 기뻐서 여행에 나선 것이다. 패딩턴 역에서 두 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바스라는 온천 마을로 갔다.

… 그렇지만 이 여행은 매우 즐거웠다. 무엇보다 소설을 다 썼다는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고, 드물게 매우 날씨가 좋았다. 그리고 때는 바야흐로 봄이었다.

p.350 '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나의 여행 역시 영국에서 드물게 날씨가 무척이나 좋았다. 바야흐로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