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와 리버풀

비틀즈와 리버풀

비틀즈의 팬들의 성지라고 일컫어지는 리버풀.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가 이 한 도시에서 태어났고, 운명처럼 만나 전세계에 울려 퍼진 곡들을 만들고 연주했다.

 

내가 좋아하는 비틀즈의 곡들 중 자신들의 고향을 그린 곡, '페니 레인(penny lane, 리버풀에 있는 거리 이름을 따서 붙인 제목으로 앨범 에 수록되어 있다.)을 들으며 그들이 어린 시절을 보낸 리버풀이라는 굉장히 도시가 궁금해졌다. 그 도시의 어떤 비밀이 그들을 '베토벤 이후 최고의 음악가로 불리게 했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런던에서 리버풀행 기차를 탔다. (런던에서 리버풀까지, 10:07~12:15, 76.30파운드)

 

Penny Lane there in a barber showing photographs

Of every head he's had the pleasure to know.

And all the people that come and go

Stop and say "Hello".

 

On the corner is a banker with a motorcar,

And little children laugh at him behind his back.

And the banker never wears a mac

In the pouring rain - very strange…. - 페니 레인 가사 일부

 

남성적인 도시 리버풀과 레논

비틀즈의 리더 레논은 삶 자체가 한 편의 영화와 같다. 4살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버지가 집을 나갔고, 이모에게 맡겨져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겨우 어머니와 교류하게 된 청소년 시기 다시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잃었다.

 

그런 배경 속에서 리버풀에서 꾸린 밴드가 세계적인 명성을 띄는 그룹으로 성장했고, 갑자기 얻은 인기로 마약, 여자 등에 빠져 방황하기도 하였다. 두번째로 결혼 하게 된 일본인 여자 오노 요코와 사랑에 빠져 수많은 안티에 시달리기도 했으며 평화운동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그리곤 정신이상자에게 총을 맞고 살해된다. 그의 나이 겨우 41세.

 

거칠고 터프한 성격 이면에 자리 잡은 예술가적인 우울함... 그와 너무나도 어울리게도, 리버풀의 첫 인상은 매우 어둡고 암울했다. 날씨도 한 몫 했지만 도시사람들 전반적으로 (이것은 영국 사람들의 특징일 수 있지만) 불친절했으며, 거리에는 험악하게 생긴 사람들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건물들은 오래되어 지저분했고, 리버풀 특유의 영어 억양은 알아듣기 어려워 방을 잡는 데도 꽤나 고생을 하였다.

존 레논은 살아 있을 때 냉소적인 말투와 태도로 많은 이슈를 만들어 냈다. (특히, '비틀즈가 예수보다 유명하다'라는 발언은 종교분쟁을 방불케 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의 시니컬함이 이 도시로부터 비롯됐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p.9 리버풀에는 불구자들이 많았는데, 키가 1미터 정도 되는 남자들이 신문을 팔고 있었다… 갈수록 점점 겨져서 깔깔거리며 웃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그건 감정을 숨기거나 감추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불구자에게 상처를 주려는 건 절대 아니었다. 그저 우리들 농담의 일부였을 뿐이고, 우리가 사는 모습이었을 뿐이다. - 中

 

겨우 방을 하나 얻고, 비틀즈가 스타가 되는 발판이 되었던 캘번 클럽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비틀즈샵이 매우 여러 곳 있었고 곳곳에 맴버들의 이름을 딴 술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건 없건.)

 

'이 도시 비틀즈가 없었으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도시 자체에는 마음이 가질 않는다.

캐번클럽에 들어가니, 여전히 비틀즈를 꿈꾸는 많은 밴드의 공연이 낮시간에도(실제로 비틀즈도 정오시간에 공연을 하였다.) 진행되고 있었다. 시끄럽기만 하고 음악성은 솔직히 말해…. 실망스럽다.

 

실내를 비틀즈 관련 기념품들로 한껏 꾸며놓아 들을 거리에 비해 볼거리는 풍족했다. 맴버들이 기증한 물건들이 하나하나 눈길을 끌었다. 비틀즈 팬들 사이에서 과히 '성지순례' 코스로 불릴만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고, 좁은 길에 습한 공기, 지하실 특유의 냄새가 진동했다. 매카트니가 그곳을 묘사하기를...

 

p.57 우리는 캐번 클럽에서 공연하기 시작했어요. 캐번 클럽은 몹시 덥고, 축축하고, 어둡고, 시끄럽고, 신나는 곳이었죠. - 中

50년이 지난 지금! 여전하다!

여성적인 도시 리버풀과 매카트니

나 역시도 레논과 같이(?) 시니컬한 자세로 리버풀 여행을 계속해갔다. 캐번클럽에서 나와 비틀즈의 모든 것을 전시한 비틀즈스토리로 향했다.

폴 매카트니는 존 레논과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른 삶을 살았다.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나 타고난 음악가였던 아버지로부터 음악적 소질을 물려받았다. 15살 때 어머니를 병으로 잃었지만, 사랑이 풍족한 가정과 친척들 사이에서 성장하면서 레논과 같이 마더컴플렉스는 겪지 않았던 것 같다.

 

동그란 얼굴과 소년과 같은 눈망울(70살이 넘은 지금까지도!)도 그의 성격형성에 한 몫했다. 레논이 매카트니에게 방황을 강요했을(?) 정도로 모범생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매카트니가 만든 노래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when I’m sixty four ' 이라는 곡이다. 매카트니가 15살 때 만든 곡이라고 하는데, 존 레논은 이런 곡을 만들 꿈조차 꿔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사랑스러운 곡이다. 나는 이 곡을 들으며 매카트니가 어떻게 이런 도시에서 이토록 다정다감한 성격을 갖게 되었는가? 궁금해 하며 항구로 향했다.

 

When i get older losing my hair,

Many years from now.

Will you still be sending me a valentine

Birthday greetings bottle of wine.

If i'd been out till quarter to three

Would you lock the door,

Will you still need me, will you still feed me,

When i'm sixty-four – when I’m sixty four 가사 일부

 

항구에 가까워 질 수록 바닷바람이 불어오면서 축축했던 몸과 마음이 조금씩 풀어진다. 폴 역시 항구에 자주 가곤 했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p.17 항구에는 자주 가곤 했다. 거기서 로맨틱한 감정을 많이 느꼈다. 친구 중 하나는 아버지가 부두의 책임자였는데,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었다. - 中

 

리버풀의 앨버트 항구 주변에 도착하자 여느 항구와는 조금 다름이 느껴진다. 따뜻한 느낌의 빨간 벽돌건물이 감성을 자극했다. 수륙양용 관광버스를 타고 밝은 미소를 날리는 관광객들을 보니 음울한 도시 속에서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

 

이 도시.. 우울하지만은 않다!

 

리버풀을 떠나며, 존 레논이 ‘저는 리버풀이 아니라 함부르크에서 자랐어요’라고 한 말을 떠올리며, 함부르크는 어떤 도시일까. 다시 궁금증을 하나 안고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