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칸디나비아반도 철도길 위에서 만난 5개 도시, 5개 얼굴

스칸디나비아반도 철도길 위에서 만난 5개 도시, 5개 얼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칼스타드를 거쳐 노르웨이 오슬로까지 약 6시간반. 오슬로에서 보스를 거쳐 베르겐까지 역시 6시간반. 창밖으로 끊임없이 침엽수림이 이어지는 스칸디나비아반도 철도 여행에서 다섯 도시, 다섯 얼굴을 만났다.

5개 국어를 하는 친절한 할아버지 in 스톡홀름

오슬로로 가고자 스톡홀름역에서 표 구입 창구에 앉아 있었다. 백발에 등이 굽은 한 할아버지가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오슬로를 거쳐 베르겐으로 가고자 한다’ 하니, ‘오슬로는 날씨가 나쁘고, 베르겐이 날씨도 좋고, 좋은 도시’라 한다. 그리곤 한 20분을 스웨덴, 노르웨이 도시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 깔끔하고 쉬운 영어가 귀에 쏙쏙 들어온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는 5개 국어를 할 수 있으시단다. 거들먹거림이 없는 할아버지 영어에는 외국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심이 묻어났다.

스웨덴 사람들은 외국인과 외국 기업들이 선호하는 나라라고 한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스웨덴어, 영어를 구사하고, 외국어를 두세 가지씩 한다. 또 어릴 때부터 정부에서 해외 체류비까지 주며 국제 경험을 시키기 때문에 글로벌 에티켓을 갖춘 글로벌 마인드를 가져, 이것이 이 국가의 성장동력이라고들 하는데, 과연 여행 중 의사소통, 매너에 관련해서 눈살을 찌푸린 경험이 없었다. 누구에게 물어도 차근차근 쉬운 영어로 대답해주는 도시였다.

5크로나 감사합니다. in 칼스타드

스톡홀름에서 오슬로로 가는 도중, 한차례 기차를 갈아탔는데, 바로 칼스타드라는 곳이었다. 역 안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간식도 먹고 하여, 코인 넣는 화장실도 들렀다. 여유롭게 5분전, 기차에 올라탔다. ‘창 밖 풍경이나 찍자’하여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려는 순간.

가방이 없다...

100m 22초 기록 보유자인 내가 우사인볼트에 빙의하여 급속도로 화장실로 뛰어갔다.

돈도 없다...

화장실에 들어 갈 수 없었다. 앞에 열심히 노트북을 두드리는 아저씨에게 ‘플리즈, 플리즈’라고 하며 돈을 빌렸다. 화장실에 들어 갔지만, 가방은 없다! 카페로 뛰어가, ‘내 가방 혹시 여기 있는지’ 물었다. 정말 다행이 맡겨져 있었다.

이 모든 것 일은 열차 출발 5분전에 이뤄진 일이다. 이 도시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화장실 앞에서 안경을 끼고 노트북을 하다, 5크로나를 빌려준 아저씨, 그리고 내 가방을 화장실에서 가져와 카페에 맡겨주신 누군가, 그리고 그 가방을 맡아주신 카페언니.

잔디 깎는 아주머니와 군대를 진두지휘하는 여군 in 오슬로

노르웨이는 남녀평등 국가로 유명하다. 남녀평등지수 1,2위를 다투고, 임신한 여성 근로자는 임금의 80%를 받으면서도 장기간의 출산 휴가를 받을 수 있다. 직업의 귀천도 적어,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을 자주 보게 된다.

오슬로 왕궁에 가니, 인상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달달거리는 기계를 타고 잔디를 깎는 아주머니다. 귀에 큰 헤드폰을 끼고, 엄청난 진동을 견디며 잔디를 깎고 있다. 한국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왕궁의 근위병교대식이 시작되었다. 군대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여군, 말을 타고 남성들 중심에서 달려오고 있는 여경찰. 모두가 인상적이었다.

산책하는 사람들 in 보스

오슬로에서 베르겐으로 향하는 기차 중간 지점에 보스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베르겐으로부터 약 100km 떨어져 있으며, 농업과 관광업이 발달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북적대는 관광지를 떠올리며 찾아갔는데, 매우 조용한 마을이었다. 강변을 따라 한적하게 산책을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곤 거의 사람들 만나볼 수 없는 도시였다.

화재에도 조식을 즐기는 사람들 in 베르겐

스칸디나비아반도 철도여행의 마지막 도시, 베르겐의 한 호텔에서 쿨쿨 자고 있는데, 안내방송으로 ‘불이 났으니 대피하라’라는 방송이 나왔다. 꿈인가 싶어, 다시 자려는데 계속 방송이 나온다. 눈꼽도 안 떼고 잠옷에 카메라, 아이패드, 여권만 들고 나가, 옆 방에서 나오는 사람들에게 의심많은 한국인 티를 잔뜩 내며 거듭 물었다.

"진짜에요?? 진짜에요????"

로비에 내려오니, 진짜 바로 옆 건물에서 불이 났으며, 소방관과 경찰들이 분주하게 오고 가고 있었다. 호텔 전 룸의 도어락도 해제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 한국인들만 정신 없다. ‘진짜 불이 났는지? 방 안에 옷 다 가져와야 하는 건 아닌지?’ 이 나라 사람들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더니, 심지어 마련된 조식을 먹기 시작한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 도시 사람들은 화재에 비교적 노련하다고 한다. 여러 차례 화재가 크게 있었고, 여러 차례 재건공사를 했다고 한다. 도시의 반이 불에 탄 적도 있으니, 우리가 겪은 화재 정도에는 노련할 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