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요리] 오차즈케 (お茶漬け)

 

 늦은 밤 따뜻한 국물에 밥을 말아서

'심야식당' 속 오차즈케

책 · 영화 ·드라마 속 그 곳, 그 맛, 그말

by istandby4u2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을 재미있게 보았다. 일부러 금요일 밤 늦은 시간에 아사히 맥주를 한 잔 마시며 (조금이나마 드라마 속 기분을 내고자?) 시청했는데, 배가 너무 고파져서 곤란해 지곤 했다.

드라마의 배경은 늦은 밤에만 운영하는 작은 식당. 그곳을 찾는 손님들의 인생이야기와 요리가 어우러져 매 회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화려하고 대단한 요리가 아닌, 소박한 요리들로 에피소드가 구성되어 있는데, 그 점이 특히 좋았다. 다들 평범한 음식을 매일매일 먹으며, 그럭저럭 살아가기 마련이니까…

'내일 꼭 해 먹어봐야지’ 다짐하고 군침을 흘리며 잠에 들었다.

심야식당 시즌1의 제3화 오차즈케 시스터즈의 이야기.

 

3명의 30대 OL(office lady) 미키, 루미, 카나는 심야식당에 자주 들러, 결혼에 성공한 여자들의 뒷담화를 한다. 마스터가 '오차즈케 시스터즈(お茶漬けシスターズ)'라고 부르는 셋이 주문하는 요리.

- 오차즈케 우메보시맛, 명란젓맛, 연어구이맛 -

어린 시절 밥을 잘 먹는 아이와 잘 안 먹는 아이 중 고르라면 나는 후자에 속했다. 밥을 먹기 싫어 떼를 쓰면 엄마는 "입맛이 없으면 찬밥에 물 말아서 김치랑 먹어라" 하곤 했다. 정말 밥이 술술 넘어 갔다. 

그런 소박한 음식에 거창한 이름을 붙인 요리가 바로 '오차즈케'. 흰 밥 위에 우메보시나 연어구이 혹은 명란젓를 올린 후 차를 부어 후루룩 마신다. 소박하지만 적당히 짭짤하여 식욕을 돋운다는 점에서 '물에 찬 밥을 말아서 김치랑 먹는 것'과 비슷할 지 모른다. 

가끔 일본 드라마에서 볼 때 마다 '뭐 그런 음식까지 사먹나' 싶었는데 작년에 출장을 갔을 때, 한 이자카야에서 먹어보니 꽤나 먹을 만했다. (비록 무지하게 짰지만) 짭짤함에 매료되었나? 나도 모르게 호텔 조식에서도 만들어 먹게 되었다.

▲ 호텔 조식에 준비되어 있는 후리카케와 우메보시, 뜨거운 물을 활용하여 만든 오차즈케

그리곤 올해 오사카에서 정말 맛있는 오차즈케를 만났다! 

'뭐 그런 음식을 사먹나' 하던 내가 무려 800엔이나 하는 오차즈케를 주문했다.

부족할 것 같아 오니기리 2개까지... (밥 안 먹던 어린이는 어디로...?)

오사카역에 있는 '다시차즈케 엔(だし漬け えん)'

이 곳에서 오차즈케를 제대로 먹어보니, '차'라는 것이 내가 호텔에서 부었던 단지 뜨거운 '물'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녹차와 다시(국물)가 절묘하게 배합된 '요리'였다. 

녹차의 비린 향을 다시가 잡아주는 것인지. 

다시의 비린 향을 녹차가 잡아주는 것인지. 

간이 적절히 들어 있고 전혀 비리지 않고 국물만 마셔도 구수했다. 명란젓을 정말 좋아하는 나는 명란젓 오차즈케로 주문했는데 명란젓 위로 차를 끼얹으니 알이 살짝 익어 식감이 더욱 좋아졌다. 

그리고 정말 맛있던 것은 함께 나온 쓰케모노(漬物, 일본식 야채절임). 무절임이 꼬드득 꼬드득 씹히며 적당한 짠 맛이 베어 나왔다. 

여행지에서 만난 한 끼 식사였을 뿐인데, 오차즈케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드라마 '어젯밤 카레, 내일의 빵' 덕분. 책으로 먼저 읽은 '어젯밤 카레, 내일의 빵'은 남편을 병으로 먼저 보내고 시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테츠코의 이야기다.

소설 자체도 매우 잔잔해서, 처음 몇 장을 읽다가 '재미없어~' 내팽겨쳐 둔 책을 엄마가 집어 들어 읽고는 "우와 너무 재밌어. 꼭 읽어봐" 해서 다시 책장을 넘겨보았다. 다시 읽어보니 꽤 재미 있었고 (플라시보 효과?), 마침 올해 10월 일본에서 드라마까지 시작해서 흥미를 더욱 돋우었다. 

드라마에서 시아버지가 여자에게 홀려 여관으로 여행을 가자, 테츠코는 어두운 부엌에서 홀로 오차즈케를 만들어 먹는다. 후루룩후루룩 소리에 묻어나는 쓸쓸함이 인상 깊었다. 

좀처럼 밥상 앞에 엉덩이를 붙이지 못한 나에게 찬 밥에 물을 말아주며 앉힌 것도 엄마. 

몇 장 넘기다 그만둔 책장을 넘기도록 책상 앞에 앉힌 것도 엄마. 

오차즈케라는 음식이 엄마와 조금 닮았을 지도 모르겠다. ^^

다시 배가 고파지는 시간이네요 ♥